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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08. 2020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강의'한다는 것

대구 오오극장에서

최근에 중앙대학교오오극장에서 강의를 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영화 감상평 쓰는 법]이라는 제목과 [영화 나답게 더 잘 보는 방법]이라는 제목이었다. 씨네엔드 ‘월간영화인’과 같은 영화 모임을 진행할 때라면 해설자가 아니라 진행자이므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설명할 만하지만 ‘강의’를 한다면 강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것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이나 기관에 의해 기꺼이 호명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건의 강의 제안을 받고 든 첫 번째 생각은 ‘내가 이것을 하기 충분한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정말요? 제가요? 강의료까지 준다고요? 물론 소규모로 ‘써서 보는 영화’ 같은 클래스도 진행해오고 있지만, 이때는 과제 합평과 피드백에 중점을 두고 ‘그간 쌓아온 생각과 경험을 공유한다’라고 클래스의 목표를 설명할 수 있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러나 기관이나 단체에서 일종의 의뢰를 받을 때, 그것은 의무감을 생기게 한다. 좋은 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더 잘 이야기해야 한다고.


겸손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내 경우라면 딱 지나치지 않다 싶을 만큼은 겸손해야만 한다. 문학이나 영화나 작문과 관련한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좋아한다’와 ‘그것을 계속한다’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종종 약간의 농 비슷한 것을 섞어 ‘영화리뷰 영역 1타 강사’ 같은 단어를 쓴 건 스스로와 가장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말을 가져옴으로써 ‘아직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도, 오늘과 같은 자리가 생기면 무엇보다 감사하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사람도 아니고 혁혁한 수상 이력이나 공적을 쌓은 사람도 아닌데, 누군가가 내게 이야기를 청해준다는 것.


오오극장은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듯 5년 전 방문했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강의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강의를 시작할 무렵에는 약간의 식은땀이 났다. 강의자료를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만든 탓인지 내 이야기가 청중들의 리뷰와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더 또렷이 했다. 90분 정도의 강의를 마친 뒤 몇몇 분들의 질문을 받았다. '공개된 채널에 글을 쓴다는 것'의 책임감과 부담감에 관하여. (뒤늦게 고백하자면, 저도 그것을 완전히 극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보이고자 노력할 따름입니다.)


대구에 사시는 인스타그램 지인으로부터 소소하지만 값진 선물도 받았다. 자가출판으로 만든 내 책의 초판을 가지고 계셨던 그분이 내민 건 내가 좋아하는 몇 편의 영화들의 전단과 엽서였다. 당연하게도, 내 이야기가 모두에게 공감되진 않았을 거다. 누군가 기대하거나 듣고 싶었을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로만 90분을 채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달뜨고 상기된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알맞게 가서 그에게 닿았다면. 그것으로 나는 소임을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글쓰기는 시작부터 많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고, 있다. 만나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마음속 선배들. 마음속 롤모델들. 평론가, 기자, 시인, 소설가들. 그들처럼 쓰고 싶다고, 그들만큼 나도 잘 쓰고 싶다고, 몇 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에 와 내 글은, 누군가에게 ‘이렇게 쓰세요’ 하고 이야기할 만한 글일 수 있을까. 동대구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KTX 열차가 출발한 뒤의 그 얼마간의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의 어떤 하루가 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앞을 가렸다. 더 하지 못한 이야기와 더 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남았다. (2020.11.08.)



씨네엔드 월간영화인 11월, 12월 모임 공지: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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