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폐의 밤들에 기행은 잠들지 못하고 바람 부는 소리를, 바람에 눈이 날리는 소리를, 가문비나무와 이깔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지푸라기와 나뭇가지가 날아가는 소리를 새벽내 듣곤 했다. 기행은 밤만 계속 이어지는 북극의 겨울을 생각하고, 그런 밤을 처음 맞이하는 어떤 사람이 있어 그가 아침과 빛을 간절하게 희망하게 되는 것을 생각했다. 또 이 세상에 태어나 어른들이나 책에서 배운 바와 마찬가지로 그 밤에도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가 믿는 것과, 그 믿음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밤 안에서 그가 죽게 되는 것을 생각했다. 그때에도 기나긴 밤, 깊은 어둠은 무심하게도 계속 흘러가겠지."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227쪽, 문학동네, 2020)
좋아하는 대상에 관해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일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다. 1번.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각인된다. 영화로 예를 들면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극장에서만 여덟 번을 봤고 그에 대한 후기나 평문도 공개된 플랫폼에만 다섯 번을 썼다. 이쯤 되니 나를 만나는 사람은 <레디 플레이어 원> 봤든 안 봤든 최소한 '김동진이 그것을 좋아한다'라는 사실을 접한 사람이 된다. 불문학자 황현산의 문장과 저서를 좋아한다고 여기저기서 말하고 다니다 보니 『파리의 우울』(황현산 역)을 선물 받은 적도 있었기에, 취향을 고백하는 일은 능히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2번. 성실한 애정을 강화하도록 의무감을 준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여덟 번이나 본 걸로 모자라 원작 소설도 두 번 읽었다고 말해버렸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레디 플레이어 원>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잘 안다는 건 암기로는 부족하다. 애정을 직관으로 만들어 그것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애정하기와 표현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된다.
3번은 이 일이 '행복의 상태'를 연장시킨다는 점이다. 신간 소식을 듣는 일과 출간을 기다리는 일, 그것을 마침내 읽는 일과 읽은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의 행복은 곱셈이 된다. 좋아하는 작가를 열 명 정도 만들어 놓으면 계절마다 신간이 나오고 한정판 굿즈와 사인본, 북토크 행사 등도 챙겨야 하므로 이 행복은 부지런하게 확대 재생산된다. 그것이 결국 2020년에 와 많은 시간을 버티고 지나오게 하는 힘이 됐다.
한 작가와 그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은 그 작품과 그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닮아가게 한다. 그 작가의 세계관을 간접 체험하게 되고 거기 담긴 세부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합물을 함께 섭취하게 된다. 그들의 이름에 의지해 불확실성의 일상을 건넜던 시간들을 여기 늘어놓는 건 물론 덕질은 나눌수록 배가 되기 때문이며... 그들의 신간을 곧 읽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사실은 모두의 일상에서 불확실성 하나를 덜어낼 수 있다.
출발점은 김금희의 산문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었다. 국내의 코로나 19 1차 대유행이 조금 수그러들고 난 뒤였던 4월. 그는 서문에 "요즘 나는 내 글을 읽을 당신이 무엇보다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이 글들이 불러일으킬 당신의 어떤 기억과 마음으로부터도."(7쪽)라고 썼고 여기서의 안전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로부터의 안전을 포함하겠다. 등단 이후 건너온 10여 년의 시간들과 그 이전 김금희의 세계를 만든 부모와 가족들, 반려견 등 특정하고 사적인 시공간에서의 경험들로부터 나온 '모든 말들'은 '김금희 유니버스'에 한 걸음 들어선 기분을 안겨줬다. 작년까지는 '북토크 가서 사인받았는데 그날 저녁에 근처 스타벅스에서 작가님 또 뵀다! 작가님이 내 인스타그램 팔로우해주셨다!' 정도의 사적인 ‘덕력’에 불과했다면 올해의 나는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김금희 유니버스에 들어선 기분은 독서 경험 전체를 소중하게 만들었는데, 가령 "사랑과 사랑 밖의 모든 말의 수신처인 각자의 "윤희에게"가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 당신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191쪽) 같은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이 왜 좋았는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것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게 됐다. 내 미력한 말들로 적어 왔던 시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시간들을 견디고 현재 진행형 이야기를 완성 중인 작가의 이야기를 만지작거리며, 거기 담긴 시간과 미처 담기지 못했으나 분명 존재할 수많은 지난날을 어렴풋이 떠올린다는 것이 행복했다. 이 산문집을 아끼고 아껴 천천히 다 읽으면서 행복을 연장하고 있을 무렵 새 장편소설 『복자에게』 출간 소식을 접했다.
거의 모든 소설가들이 소재나 대상에 대한 자료 조사를 심도 있고 성실하게 하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거나 오래 천착해 온 어떤 것에 관해 숙고하여 소설을 쓸 것이다. 이를 '덕질로서의 소설 쓰기'라고 할 수 있다면, 내 기준에서 잘 쓰는 사람은 잘 덕질하는 사람이다. 마음을 다해 쓰는 사람. 올해 읽은 책 중 『복자에게』는 특히 제주 덕질의 달인이었다. 제주에서 일어났던 사건, 제주 사람들의 말씨, 그들의 고유한 직업, 제주와 '뭍'의 거리 등에 이르기까지. 장편보다 경장편에 가까운 분량 안에 그것들이 모두 담겼다. 이러한 덕질로서의 소설 쓰기는 가장 특수하고 고유한 사람, 상황, 세계를 만들고 거기서 인간 보편의 어떤 마음이나 윤리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제주에서만 있을 수 있는 섬사람들의 경험과 '육지와 섬'을 오가며 살아온 어떤 이들의 생생한 삶 속에, 우리가 흔히 '사람이라면 그래야지'라든가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지' 같은 말들을 떠올리게 되는 일들이 가득했다. 그 결과 『복자에게』를 읽는 내내 주변인에게 ‘이 소설 좀 읽어보라’고 말하고 다녔고 특히 제주에 살거나 제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말을 더 반복적이고 적극적으로 했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을 때처럼 문장이 마음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기분을 『복자에게』에서 더 많이 만났다. 영초롱에게서, 오세, 고모, 준욱, 양선배에게서, 그리고 ‘복자’에게서. 이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기기 불과 두 달 전 다른 소설을 읽고 '이변이 없는 한 내 올해의 소설일 것 같아!'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 이변이 이제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김금희와 함께 내 '작가 덕질'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소설가가 김연수이며 방금 말한 먼저 읽은 소설이 7월에 나온 『일곱 해의 마지막』이다. 이 소설 하나로 인해 이름과 한두 편의 시 외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백석이 산 시대를 내내 그리워했고 퇴근길에는 서점에서 백석 시집을 손에 들어야 했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1962년 5월 「나루터」라는 김일성 찬양 시를 생전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그 후 1996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백석의 행적을 이해하고자 한 김연수의 '백석 덕질'이 담긴 산물이다. "삼십여 년에 걸친 기나긴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옛말과 흑백사진과 이적표현의 미로를 헤매고 다녔다."(244쪽, 작가의 말)
그는 백석이 들었던 것으로 알려진 음악을 집필 내내 찾아 듣고 그가 실제 들었을 가능성이 낮은 음악도 소설 속 '기행'이 듣게 하면서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을 소설로 만들었다. 물론 실제 일어난 일과 일치하지 않지만 『일곱 해의 마지막』을 통해 김연수는 삼수 관평리 어디에선가 화전민들이 피워낸 불길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 있었을 그의 표정을 러시아와 북한을 오가며 여러 실존 인물과 가공인물들의 서사를 빌어 재구성한다. 그의 산문 『소설가의 일』 이 그러했듯 이 소설 역시 결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무쇠 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172쪽)고 해주는가 하면 "누가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를 떠날 수 없었"(189쪽)을 심정을 헤아린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이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190쪽)이라고도 말한다.
어느 여름날 버스에 몸을 실은 직장인의 퇴근길 의식의 흐름도 소설이 되고,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개발사 직원이 월급을 신용카드 포인트로 받은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도 소설이 된다. 서사는 일상의 작은 균열이나 의문에서 시작해 미지의 세상과 경험으로 나서는 이야기를 대개 창조한다. 그러니 거의 모든 것이 소설이 될 수 있지만, 칠월의 일주일 동안은 『일곱 해의 마지막』만이 진짜 소설인 것처럼 믿는 마음으로 보냈다. 지금에 와 이북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을 회고하는 일이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백석이 삼수 협동조합으로 떠날 때의 나이가 이 소설을 쓸 때 자신의 나이와 같았다며 "죽은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246쪽)에 관해 쓰고자 했다는 김연수의 문장이 잊히지 않았다. 그 마음들은 결국 일상을 사는 방식을 재정립하고 얼어붙은 세계를 깨며 삶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활력이 된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내가 경험해 온 김연수 세계의 집대성이었다.
4월 『사랑 밖의 모든 말들』, 7월 『일곱 해의 마지막』, 그리고 9월 『복자에게』까지. 단 세 권의 책만으로 일 년 중 그것들과 함께하며 덕력을 충전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낀 나날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쓸 수 있다. 전년도에 나온 『오직 한 사람의 차지』라든가 『시절일기』 같은 경우도 포함하면 내 한 해는 요즘 말로 팔 할 이상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로 채워져 있었다. 작가 덕질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일단 나 하나는 구한다. 다가올 한 해에도, 좋아하는 것을 더 성실히 좋아하며 보내고 싶다. 많은 신간들에 둘러싸여 있겠지만, 계절마다 한 번씩은 김금희와 김연수의 세계를 거닐겠다고 공개적으로 중얼거린다.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