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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04. 2020

세상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사적인 이야기에 관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는 중년이 된 '파이'가 자신을 찾아온 작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길고 자세하지만 믿기 어려운 버전 하나와, 짧고 명료하지만 잔혹하고 상상의 여지가 없는 버전 하나. 고민하던 작가는 한쪽을 택한 뒤, 그게 '더 나은'(better)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나음'이란 물론 좋고 나쁨이 아닐 것이다. '파이'가 들려준 두 이야기는 모두 다른 누구도 증명하거나 규명할 수 없이, 오직 '파이' 본인에게만 존재하는 이야기다. 작가가 둘 중 어느 한쪽이 아닌 다른 한쪽을 택한다는 건 그 하나를 고른 계기에 그가 세상을, 이야기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작용했음을 뜻한다.


한 이야기를 읽은 '나'는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함께 체험한 사람이 된다. 눈에 보이고 믿을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면, 이런 체험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과 불가항력적인 일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이야기가 주는 힘은 지금으로부터 어딘가로 향할 수 있게 한다.


당장 그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게 아니라 어렵사리 '향할 수 있게' 한다. 결과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시도와 과정을 가능하게 하며 거기에는 몇 번이고 실패와 좌절이 있을 것이다. 자명하고 확실한 것들만이 아름다움을 주는 게 아니라, 알 수 없고 때로는 아픈 것들이 어떤 것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 내지는 가능성을 준다.


어슐러 르 귄은 "통찰력과 연민과 희망을 얻는 데 상상력만큼 적합한 도구는 달리 없"다고 말한 적 있다. (『밤의 언어』에서) 상상한다는 건 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할 것이다. 당장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어서 간신히 파이 파텔과 어슐러 르 귄의 말 같은 걸 빌려서 간신히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보내도록 나는 우주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여서 끝내 가능성에만 머무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하루가 있다. 모둠회와 소주를 앞에 두고 의식의 흐름처럼 대화 보따리를 대충 풀어놓았지만 그것에 관해 더 기록하고 싶다. 가령 '보이지 않는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해보면 어떨는지.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그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나 사이의 관계로부터 온다. 다시 말해 그걸 찾는 건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를 계속 쓰다 보면, 가끔 안이 아닌 바깥으로부터 답을 원하게 될 때가 있다. 올해의 몇 달은 밖을 보느라 흘러간 시간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럴 때마다 안을 더 긴밀하게 보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10월은 그런 것들로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2020.10.04.)



씨네엔드 월간영화인 - 10월 이안 감독 편('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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