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원데이 클래스를 마치고 나서 들은 채드윅 보스만의 소식으로 내내 황망한 오후를 보내고 나서, 얼마 전 주문한 테일러 스위프트 8집 앨범을 받았다. 여러 의미의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 하루. 삶을 살게 하는 많은 것들은 무형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먼저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나 애착의 마음, 혹은 누군가로부터 받는 마음 같은 것. 그리고 소위, '덕질하는 마음' 같은 것도.
거창하게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 정도의 글' 같은 걸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저 혼자면 족하다. 타인에게 읽히기 위한 글 역시 결국은 자신이 첫 번째 독자이고, 나는 언제나 쓰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을 쓴다. 좋아하는 것, 관심이 가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관하여 쓴다.
테일러 스위프트에 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의 앨범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기뻐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면서 들뜨며 배송 소식에 그날 하루 전체를 예정된 미래를 선물 받은 기분으로 보낼 수 있다. 레이디 가가, 콜드플레이, 심규선, 시얼샤 로넌, 김연수, 김금희, ... , 내게는 그런 '얕고 넓은 덕질'의 방향이 되는 이름들이 몇 명 더 있다.
새 책을 사고 새 앨범을 사고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가 출연한 신작 영화를 보고 그에 관해 생각하는 일들은 오직 사적인 것이다. 때로는 글 같은 것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사사로운 일들. 그렇지만 일상을 살게 하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사사롭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사소한 일상에 관해 기록한다. 좋아하는 것, 관심이 가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들. 오늘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을 손에 들고 한참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테일러가 자신의 새 정규 앨범 발매 소식을 그것도 발매 불과 16시간 정도를 앞둔 '서프라이즈'로 전하며 (팬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Picking up a pen was my way of escaping into fantasy, history, and memory." 그에게는 노래를 만드는 일이 환상과 역사와 기억을 넘나드는 방식인 것이다. 내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결국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에 관해 기록하는 일이 살아있음을 정의하는 고유한 방식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CD플레이어도 없으면서 음반을 구입한 것이고 지금 그것에 관해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