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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23. 2020

함께 무른 채로 안부를 묻기

평안을 바랍니다

최근 [1인분 영화] 이메일 연재를 위해 두 번 다시 감상한 <레이디 버드>(2017)에는 관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한 대목이 있다. 새크라멘토가 재미도 없고 지긋지긋해서 빨리 (뉴욕으로) 떠나고 싶다고 하는 크리스틴에게, 수녀 선생님이 하는 말. "글에서 새크라멘토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더라."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냥 있는 대로 썼어요." "근데 그 속에 사랑이 느껴져." "네, 뭐 관심은 갖고 있죠." "그 둘이 같은 거 아닐까?"


뉴욕에 간 크리스틴이 첫 하루를 보낸 다음날 먼저 하는 일 역시 안부를 묻는 전화통화다. 편안한지 여부를 묻는 일. 이것 역시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음을 내포한다. 묻는 마음에는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마음이 깃든다. 봄에서 여름을 지나오며 떠오르는 이들의 안부를 종종 물었다. 자주 연락했던 이도, 아주 오랜만에 연락했던 이도 있다. 오랜 근황을 나열하기도 했지만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화들도 있었다.


다짐이나 약속 같은 것을 쉽게 하지 않겠다고 상반기를 돌아보며 적었지만, 이런 종류의 다짐은 필요하다. 안부를 다짐하는 일, 당부하거나 바라는 일이. 요즘 이메일을 쓸 때도 그런 표현을 거의 빼놓지 않게 된다. 무탈한 오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라든가 편안한 한 주 보내세요, 같은. 내 곁에 혹은 주위에 있는 이들이 평안하기를 정말로 바란다.


"퇴근했어 별일없이잘살고있는가 비안오는가 여기는오락가락하는데" 퇴근할 무렵에는 엄마로부터 종종 메시지가 와 있다. 엄마는 3~4개의 화두를 한 줄로 축약해내는, 짧은 글쓰기의 달인이다. 안부를 묻는 일에는 대단한 형식이 필요하진 않다. 묻는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별 일 없냐고. 생각이 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특히나 지금과 같은 나날이라면 묻는 행위 자체가 곧 이유가 된다.


오늘은 좋아하는 서점에 그냥 들러서 고른 책을 샀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고마운 격려와 응원도 받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나날의 일들을 미리 나눴다. 그때 가서 한 번 더 물을 것이라고 작정한 채 미래의 안부를 당겨 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서는 길에는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


밤에는 이 문장을 오래 두고 읽었다. "이 세상에선 홀로 단단해지는 것보다는 함께 물러지는 편이 더 견디기 좋다는 걸 배웠습니다." (김연지,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에서) 나는 별로 단단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아직 안부를 묻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는 이름들이 몇 있다. 관계가 넓지 못해서, 그 이름들과 얼굴들이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가을이 오기 전에 인사를 전해야겠다. 여러 번 해야겠다. 많은 관심만큼 많은 안부를.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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