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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3. 2020

그 길 끝 혹은 과정에 있을 무엇을 기꺼이

마주해볼 작정이다


준비 중인 책이 혹시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책을 출간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객의 취향'에서 진행하고 있는 4주간의 영화 글쓰기 클래스 <써서 보는 영화>에 참여해주신 분인데, 어느 출판사의 6년차 편집자이셨고 내 글을, 글쓰기 클래스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좋게 다가오셨다고 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어떤 용기를 얻었고 그게 혼자만의 것은 아닐 수 있겠다 생각하셨다고 했다. 영화 리뷰 과제를 제출하면서 메일 말미에 추신으로 적어주신 그 이야기에 새벽 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책 한 권 쓴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그 책을 쓰는 사람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은 잘 안다. 내 글이 얼마나 읽힐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만드는 게 편집자의 일이라고, 주간회의 때 내 이야기를 해볼 작정이라고 하셨다.


주말 동안에는 거의 두 달 전부터 보고 싶어 했고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를 드디어 영화제에서 관람하고 감독님의 GV까지 참석했다. 반가운 지인과 근황을 나누고 서점을 둘러보며 책과 영화 이야길 했다. 집에 가려던 길의 지하철에서 중간에 내려가고 싶었던 서점에 첫걸음 했다. 다른 곳에서 만나 봬 안면이 있고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책방지기 님과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었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해 주고받았다. 날씨는 걷기에 알맞았고 비가 쏟아진 뒤의 하늘은 가시거리가 멀었으며 여러 색깔들을 담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으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책을 읽는 것으로는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것이 사람과 사람의 대화에 있었다.



여름을 싫어한다고 여기저기서 말하고 다녔는데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여름에 일어났다. 정확히는 여름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더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을 것이다.


과제 피드백을 위해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도 '참 좋다'라고 생각했었다. 클래스를 진행하면서도 '꼭 공개된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 올려보시라'고도 말했다. 좋은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도 좋겠다는 진심. 그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성실한 진심'이란 이런 것인가 하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말간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는 일이라 해도 좋다. 어쩌겠어. 작은 말 한마디도 오래 담아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인데. 글을 다 쓰고 나서도 이게 맞을까 하고 오래 생각하는 사람도 나인데.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이라는 이름으로 혼자 책을 편집하고 디자인해서 슬며시 내놓았던 게 재작년 가을의 일이다. 그리고 2020년 여름. POD(주문형 출판)용으로는 여전히 온라인 유통을 열어두었지만 자비를 들여 소량 인쇄한 책은 오늘로 절판했다. (정확히는, 절판한 게 아니라 재고를 모두 소진했다.) 이 여름이 내게 얼마만큼의 무엇 일지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생각할 작정이다. 그 길 끝 혹은 과정에 있을 그 무엇을 기꺼이 마주해볼 작정이다. (2020.07.27.)



신세계아카데미 가을학기 영화 글쓰기 강의: (링크)

탈잉 원데이 클래스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lnk.bio/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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