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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09. 2016

한 방이 아니라, 한 번. 시행착오에서 배우는 기회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더그 라이만

게임은 실제가 아니라 가상이기에 간접 경험을 통해 새로 삶을 얻을 수가 있다. 어릴 적 즐겼던 몇몇 컴퓨터 게임들을 떠올려본다. 새로 '방'을 만들어서 플레이하거나, 코인 같은 것을 충전하거나 하여 리셋이라는 걸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생은 한 번이다.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이 시간에도 돌아올 수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군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타임 루프라니, 남자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책에 손 베는 것조차 무섭다"고 말하던 장교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이등병이 되어 외계에서 온 '미믹' 족을 상대하는 최전선에 투입된다. '미믹' 족의 '중간 보스' 격인 알파의 영향으로 그는 뜻하지 않게 전장에서 죽으면 죽기 전날 아침으로 돌아가는 능력(?)이 생긴다. 단,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 받으면 그 능력은 사라진다.

(<시선일삼> 시선칠 '물건 - 타임머신 백과사전' 중에서)


일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에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의 '빌 케이지'(톰 크루즈)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적은 바 있다. 다른 그 어떤 이야기든 하기에 앞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굉장히 매끈하게 잘 빠지고 세련된 특급 오락 영화다. 좀 더 나아가면 게임 같은 영화다. 그 설정 자체가 그렇고 액션을 표현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캐릭터의 표현 방식이 그러하며, 관객을 배려한 완급 조절과 엑소 슈트 등을 그려내는 디테일, 주연과 조연을 나누는 알맞은 분량 안배 등 거의 모든 요소에 있어서 거의 그래픽 노블에 가까운 원작의 설정과, 한 편의 상업 영화로서 필요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흠 잡을 데 없이 충실하게 갖췄다. 애써 메시지를 설명하려 들지 않음에도 잠재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부분에 대해 전달력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북미 흥행이 신통치 못했던 것은 여전히 아쉽고도 미스터리한 점!) 톰 크루즈의 Sci-Fi 장르 영화는 과연 실망시키는 법이 결코 없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게다가 더그 라이만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에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명쾌한 각본과 제작, 촬영, 음악, 연기 등의 앙상블까지.



영화에서는 중반까지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꽤나 유머러스하게 다뤄지지만, '케이지'가 갖게 되고 '리타'(에밀리 블런트)가 한때 가졌던 (능력이라기엔 애매하다, '오메가'의 힘으로 인해 일종의 속박과도 같은 것에 빠진 격이므로) 타임 루프는 완전하지 않다. 수혈을 받으면 풀릴 뿐더러 '미믹' 족이 인류를 침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아마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간을 깨어나서 "일어나, 굼벵아!"라는 하사의 말을 들어야 했을 '케이지'는 도대체 이게 뭐지 싶은 심정으로 나날을 보내다 어느 순간 학습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다. (그 '학습'이 가장 멋드러지게 그려지는 장면은 그가 '리타'에게 처음 수송선이 곧 폭파된다고 말하는 신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배우는 것으로 모자라 '리타'에게 전투 훈련도 받으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메가'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가끔 오락실에서 새 동전을 넣든 살면서 리셋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는 않을 텐데, 싶은 것이다. 하지만 리셋 같은 건 없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미 인지하고 있다.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 번이니까. '케이지'가 '리타'가 죽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봐야 했던 것처럼, '리타'가 '헨드릭스'의 죽음을 셀 수 없을 만큼 바라봐야 했던 것처럼, 리셋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반드시 좋은 것만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방법은 있다. 어제를 오늘의 동전 삼아, 오늘을 내일의 동전 삼아 실패로부터 경험하고,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발전해가는 것.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다음 단계로 가기 직전의 경계(Edge)에 우리는 있다. '한 방'이 아니라, '한 번'이다. (★ 9/10점.)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2014)>, 더그 라이만

2014년 6월 4일 (국내) 개봉, 113분, 12세 관람가.


출연: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 빌 팩스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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