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일상은 고단하다. 혼자의 자유가 거의 허락되지 않지만 정작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에는 끝 모를 고독에 시달리기도 하고,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많은 팬들의 앞에 섰을 때 느끼는 어떤 행복감, 혹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정들이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스타의 무대 뒤 모습을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존재가 소중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아티스트에 대해서라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Blackpink: Light Up the Sky, 2020)는 지수, 제니, 로제, 리사 4인의 멤버로 구성된, 올해로 데뷔 5년 차를 맞이한 그룹 블랙핑크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영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컷
서두에 인용한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을 비롯해 <미스 아메리카나>(2020) 같이 당대의 스타를 주인공으로 삼는 다큐멘터리는 몇 작품이 더 있다. 당겨 말하자면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위의 두 작품에 비해서는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이는 주로 네 명의 멤버 각각의 스토리를 79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에 집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레이디 가가와 테일러 스위프트를 다룬 두 작품은 각각 100분, 85분의 상영시간을 갖고 있다. 둘의 활동기간이 블랙핑크보다 훨씬 길다는 점을 고려해도, 아무래도 한 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경우다 보니 어쩌면 필연적인 차이일 수 있다.)
영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컷
영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컷
그럼에도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이미 블랙핑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보다는 막연히 노래 몇 곡 정도만 들어본, 혹은 그들에 대해 궁금한 이들에게 적합한 다큐멘터리다. 연습생 시기부터 데뷔 후 지금까지
를 돌아보며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각 멤버들의 인터뷰는 물론, 오디션 장면과 데뷔 전 안무 연습 장면 등의 영상 풋티지를 비롯해 북미와 동남아, 유럽을 포함한 월드 투어 당신의 생생한 실황들까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걸어온 길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살펴보며 앞으로의 전망을 보는 이들의 감상에 전적으로 맡기는 이 다큐멘터리의 분량을 떠나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 치열하게 일상을 보내며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경험하는 지수, 제니, 로제, 리사 각 멤버들의 이야기에 누군가는 깊이 매료될 수도.
사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대목은 영화 후반부 네 사람이 한 식당을 찾아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데뷔 전부터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곳에서 네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마흔 살쯤 되면 우리 뭐 하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그 나이 무렵 되면 춤을 20대 때처럼 추지는 못할 거라면서, 20대 초중반의 네 사람은 다만 지금처럼 서로 함께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맨 앞에 인용한 레이디 가가의 말과 꼭 비슷한 이야길 하기도 한다. 다고."나이를 먹고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준다 해도 괜찮아요"(지수)라고. 다만 팬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다고.
어떤 이는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가까이하면서 자랐다. 어떤 이는 부모님의 권유에 불쑥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또 어떤 이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음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몇 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자연스럽게 '블랙핑크'라는 한 팀이 된 그들은 "자기 일에 온 힘을 다 쏟아붓는 일이야말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로제)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음악에 열려 있는 시대를 산다는 게 기쁘다"(제니)라고 털어놓고, "코첼라 공연을 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즐겁게 공연할 수 있는지 알게 된 것 같다"(지수)라며 공연을 마치고 난 후 무대 뒤에서 그것을 돌아본다.
영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컷
영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컷
영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컷
세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로 인한 불안감이 일상을 잠식할수록, 그럴수록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소중한 것에 기대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한 스타를 오래 좋아하고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투어 마지막 공연을 마친 뒤 지나온 시간을 다시 살듯 그것을 회상하며 벅찬 눈물을 흘리고 또 서로를 다독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와 같은 다큐멘터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에너지와 영감의 작은 원천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블랙핑크의 네 사람 역시, 계속해서 스스로의 기쁨과 성취를 찾고 이뤄나가며 아티스트로서 스타로서 자신의 세계를 계속해서 넓혀나가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도 덧붙여본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고 그것을 통해서만 기쁨과 성취를 느끼게 되면 나쁜 일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