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리타니안>(2020)은 테러 용의자로 지목돼 쿠바 남동부의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에 수용된 '모하메두 울드 술라히'(타하르 라힘)에 얽힌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자행된 여러 끔찍한 정황이 드러나는 가운데 큰 줄기는 강압적으로 억류된 '술라히'의 신변을 둘러싸고 그의 변호인인 '낸시 홀랜더'(조디 포스터)와 미국 정부 및 군 사이에서 오가는 법정 공방이다.
이 바탕에는 크게는 '술라히'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쪽과 그를 유죄로 만들려는 쪽 간의 대립이 있다. 하지만 '낸시'와 해병대 감찰관인 중령 '스튜어트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사이의 대결처럼 보이던 <모리타니안>의 초반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와 그것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된 영화 언어 장치들이 펼쳐진다. 요컨대, 죄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그 사람의 인권이 법 테두리 안에서 지켜질 권리를 박탈할 근거가 되는가. 다시 말해,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이를 변호하는 일은 국가와 법질서에 반하는 일인가.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컷
표면적인 이 서사를 주도하는 인물은 '낸시'와 '스튜어트'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모리타니 사람인 '술라히'의 내면 묘사에 <모리타니안>은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기소도 재판도 없이 몇 년을 가족과 떨어져 고립되어야만 했던 그에게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몇 개의 시간대를 오가며 세세하게 보여주는 반면 '낸시'와 '스튜어트' 그리고 '낸시'의 파트너인 '테리'(쉐일린 우들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캐릭터의 전사가 축소된 채로 다룬다. (물론 '스튜어트'가 이 일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나름대로 충실히 언급된다.)
<모리타니안>에서 현재 시점에 해당하는 장면들은 2.35대 1 화면비율(시네마스코프)이지만 과거 시점에 해당하는 장면들은 딱 한 군데를 빼고 모두 1.33대 1 화면비율이 쓰였다. 시간적 배경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화면비율을 사용하는 작품들이야 <덩케르크>(2017)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처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모리타니안>에서도 저 서로 다른 화면비는 꽤 중요해 보인다.
시점상 과거에 해당함에도 1.33대 1 화면비율이 아닌 한 장면. <모리타니안>에서 과거 시점을 떠올리는 주체는 얼핏 주인공 '슬라히'인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그 한 장면은 '스튜어트'(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동료인 '닐'(재커리 레비)이 어떤 지난 일을 상기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도 영화의 카메라는 그 자체로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과거냐 현재냐가 아니라, 누구의 시점인가 하는 것이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컷
앞에서 영화의 과거 시점을 떠올리는 주체가 '얼핏' '술라히'처럼 보인다고 한 것은 그게 결국 '낸시'와 '스튜어트'가 방대한 문서 더미에서 찾아내는 '술라히'에 관한 기록들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술라히'가 최소한의 인권도 지켜지지 못한 채 고문을 당하는 등의 행적들은 그의 증언과 당시 군의 기록 문서 원본을 통해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 문서를 낱낱이 읽고 있는 '낸시'와 '스튜어트' 역시 정서적으로 동요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낸시'와 '테리'가 법정으로 향하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앞의 것에는 럼스펠드와 부시의 사진이 걸려 있고 뒤의 것에는 바이든과 오바마의 사진이 보인다. 보통 복잡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에 주목하겠지만 <모리타니안>은 두 장면 모두 굳이 대통령과 부통령의 대형 사진이 잘 보이도록 롱 쇼트로 촬영했다. 비선형적으로 촘촘하게 짜인 플롯에서 둘은 당연히 (연도와 장소를 알리는 자막과 더불어) 시간적 배경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하나의 장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질문을 던진다. <모리타니안>이 다루는 문제는, 게다가 그 대상이 미 합중국 정부인 문제에 대해서는 부시 행정부든 오바마 행정부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영화가 끝나고도 이것은 전 세계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진행형인 사안을 포괄한다. 단순하지 않지만 때에 따라 단순해지기도 하는 문제를, 납득할 만하게 다층적인 방식으로 <모리타니안>은 잘 전달해낸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컷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컷
오직 법과 질서를 수호한다는 하나의 대전제. 영화 초반 "헌법에는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 있다는 주석은 없죠."라는 대사가 짧게 지나간다. 실화 바탕의 법정 드라마에 대해 예상 가능한 전형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끄덕여지는 의도와 맥락에서 보다 넓게 확장된 물음을 관객에게 전해주는 영화. 2만 페이지에 달하는 MFR(Memorandum for the Record)을 샅샅이 읽는 '낸시'의 모습으로부터 토드 헤인즈의 <다크 워터스>(2019)에서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이 비슷한 자세로 앉아 비슷한 맥락의 서류 뭉치 더미에 둘러싸인 모습을 떠올렸다. 완벽하게 정의롭고 무결한 사람은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그의 어떤 태도와 철학 같은 것이, 그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좋은 이야기이자 필요한 이야기는 종종 그런 것을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