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Apr 05. 2021

삶이 잊어버린 것들의 총합이라면

영화 '더 파더'(2021) 리뷰

"그때 거기에서 내 목소리 안에서 빛났던 말들. 그 말들과 목소리를 기억하자. 그 안에 내가 있었다. 내 존재의 힘이 있었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기억의 총합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수긍하는 말이고 또 좋아하는 말인데, 그건 삶이 혼자의 것으로만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적이 전혀 없는 외딴곳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어느 정도 사회화되어야 하고 그것은 곧 타인과의 공존을 뜻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유한하고 또 미약하다. 나는 어제 만난 사람들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으며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특정한 경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앞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의미로는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나의 오늘은 지금껏 살면서 잊어버려온 것들의 총합이다."라고. 이런 이야기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등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더 파더>(2021)를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플로리안 젤러의 첫 장편 연출작인 <더 파더>의 첫 장면은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앤'(올리비아 콜맨)의 모습이다. 영화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접했을 관객은 이렇게 짐작할 것이다. 아,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딸의 모습이겠구나.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죽은 가족을 찾는다든지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겠구나.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아니, 영화의 연출과 각색, 그리고 동명의 희곡을 쓴 플로리안 젤러는 <더 파더>를 그런 이야기로 만들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야 한다.


넓게 생각하면 <더 파더>의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지만 영화의 시점은 전형적인 가족과 보호자의 그것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안소니' 자신의 시점과 입장에 가까운데, <더 파더>의 전개는 기억을 잃는다는 것보다 잊은 건지 잃은 건지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알 수 없는 파편들이 크고 작은 조각과 그림이 되어 어떻게 '안소니'의 오늘을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가령, 손목시계는 어떤가. '안소니'는 영화 전체에 걸쳐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찾는데, 간병인이 자기 시계를 훔쳐갔다고 확신하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방에 들어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시계를 손목에 차고 나와 "지금 5시야, 혹시 궁금할까 해서" 같은 말을 하는가 하면 또 얼마 뒤에는 시계 못 봤냐고 딸에게 묻는다. '안소니'는 8시가 '약 먹을 시간'이 아니라 여느 하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8시라고 믿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지금 자기 삶을 뒤흔드는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아직 문제없다고, 괜찮다고,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믿으려 한다. 그러한 자의식의 발현이 이를테면 시계를 찾는 행위이며 '지금 몇 시'인지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고 믿는 일 같은 것이겠다. <더 파더>는 이런 식으로 인물의 내면에 세밀하게 접근한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캐릭터에 대한 접근만 인상적인 게 아니다. 간과하기 쉽지만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집에는 수많은 그림 액자들이나 오래된 가구, 사진 등이 등장하는데 이는 '안소니'가 가지고 있었을 다양한 미적 취향이나 예술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한편 영화의 핵심 소재와 서사를 반영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벽난로 위에 어떤 장면에서는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 그림은 '화가였던 둘째 딸이 그린 것'이라 언급된다) 어떤 장면에서는 벽에 액자가 붙어 있던 흔적만 엿보일 뿐 아무런 그림도 걸려 있지 않다. 어떤 장면에서는 벽지의 색상이 다르다든지, 또 어떤 대목에서는 의자의 정돈이 다르게 되어 있다든지. '안소니'의 세계에 찾아온 혼란을 <더 파더>는 시각적으로도 담아낸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이와 같은 토대 안에서 영화 <더 파더>의 연기 앙상블은 더 빛난다. 올리비아 콜맨이 연기한 딸 '앤'은 물론, '앤'의 연인인 '폴'(루퍼스 스웰)과 새로 오게 된 간병인 '로라'(이모겐 푸츠) 등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은 비중에 관계없이 '안소니'의 당면한 혼란을 극대화시킨다. 어떤 장면에서는 '앤'을 올리비아 콜맨이 아닌 올리비아 윌리암스가 연기하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마크 게티스가 연기한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이 '앤'의 남편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딸이라는 거야?', '앤은 결혼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같은 질문이 초반부 관객들에게 생겨날 만도 하지만 이는 불필요한 트릭 같은 것이 아니라 '안소니'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물론, 초반부를 지나며 생겨나는 혼란들은 후반에 가면 적어도 관객에게는 말끔히 해소된다.)


 "화창할 때 많이 걸어 다녀야죠, 화창한 날씨는 오래가지 않으니까."


영화 '더 파더' 스틸컷


곁의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것은 주변인의 생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기억을 잃어가는 본인의 생각에 가깝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놓쳐가는 나날이 계속되어갈수록 그의 내면은 점차 무너진다. 붙잡으려 해도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온통 삶을 흔들고 난 뒤, 어떤 이는 변화된 삶에서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고 일상을 되찾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삶의 끝을 기다린다. <더 파더>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이기보다는 혼란의 끝에서 결국 주저앉아 자신의 삶이 이제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에 가깝다.


'A'가 아닌 'The'를 쓴 영화의 제목은 '안소니'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마치 불가항력의 거스를 길 없는 순리를 가리키는 듯 읽히기도 한다. 한쪽에서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붙잡으려 애쓰는 동안 또 다른 생의 어떤 면은 그것을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흘려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 지금이 다른 어떤 순간과 같지 않은 바로 그 지금임을 생각하는 일과 그것이 주는 감각을 산책하는 일 정도겠다. <더 파더>는 관객의 기억에 혼란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주인공의 내면에 보다 생생히 접근한다. 끝에 남는 어떤 쓸쓸한 풍경을 향해 창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까지도.



영화 '더 파더' 국내 메인 포스터

<더 파더>(The Father, 2021), 플로리안 젤러

2021년 4월 7일 (국내) 개봉, 97분,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마크 게티스, 올리비아 윌리암스, 이모겐 푸츠, 루퍼스 스웰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영화 '더 파더' 스틸컷

*(★ 7/10점.)

*영화 <더 파더> 예고편: (링크)

본 글은 판씨네마(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아, 영화 관람 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있음의 조건을 묻는, 경이로운 시네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