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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29. 2021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이야기하는 일

영화 '빅 피쉬'(2003) 리뷰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 믿을 수 있겠니?
나는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큰 연못에서 노는 큰 물고기, 그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란다.
처음부터 그랬어.”

-다니엘 월러스, 『큰 물고기』,
장영희 옮김, 동아시아, 2004, 37쪽.



“내가 옛날에 말이야...”하고 언제나 이야기를 꺼내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윌’(빌리 크루덥)은 수십 번도 더 들은 그 이야기를 그저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될 수는 없었느냐는 ‘윌’의 말은 진심이다. 다니엘 월러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빅 피쉬>(2003)는 원작이 아니었더라도 어쩌면 팀 버튼 감독이 맡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는 데뷔 이래 꾸준히 이상하다고 치부될 만한 다름에 천착해온 인물로 보이고 시기와 소재를 뛰어넘어 팀 버튼이라는 세계가 공유하는 일관된 하나의 가치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영화 '빅 피쉬' 스틸컷


<빅 피쉬>의 이야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난날의 일대기를 꺼내 들추는 이야기이지만, 표면상의 구조는 아버지가 아닌 아들이, 바로 그 ‘아버지가 들려줬던 것처럼’ (관객에게) 이야기를 한 번 더 들려주는 식으로 짜여 있다. 이 영화의 정수는 여기에 있으리라고 본다.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들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해 다시 말하는 이야기. 큰 물고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자신이 영영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큰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완 맥그리거/알버트 피니)은 출생부터 남달랐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고, 일찍부터 키가 컸으며, 미식축구와 농구 등 가리지 않고 운동을 잘했다. 더 큰 세상으로 가고 싶었던 ‘에드워드’는 한 서커스를 구경하러 갔다가 자신이 운명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한 번 더 만나기 위해 서커스단의 조수로 일하며 3년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후 군에 징집돼 해외로 파병을 가면서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그 ‘스케일’이 점점 커진다.


영화 '빅 피쉬' 스틸컷


‘에드워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굴에 살며 양을 잡아먹을 정도로 큰 거인, 숲 속의 유령 마을, 머리와 상반신이 둘이고 다리가 하나인 샴쌍둥이 등은 모두 ‘윌’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윌’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나아가 아버지라는 사람 역시도 자신이 이해할 수는 없는 메타포 같은 존재라 여겼다. 그랬던 ‘윌’은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에드워드’가 어머니 ‘산드라’(앨리슨 로먼/제시카 랭)에게 군 복무 중 쓴 편지를 발견하면서 아버지의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앞서 <빅 피쉬>의 정수가 있으리라고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되풀이해 들려주는 ‘윌’의 이야기는 바로 그 편지가 발견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막연한 은유가 아니라 자신이 듣고 자란 허황된 이야기들이 실은 아버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종의 작은 창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윌’은 그 이야기를 직접 돌아보면서 깨달아간다.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면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거란다. 그걸 알고 있니?”

-다니엘 월러스, 앞의 책, 36쪽.
영화 '빅 피쉬' 스틸컷


<빅 피쉬>는 당시 팀 버튼이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가 맡을 수도 있었던 작품이다. 제작 스케줄 문제와 캐스팅에 관한 이견 등으로 감독이 바뀌게 된 사례이지만 두 사람 모두 스토리텔러로서 이 ‘큰 물고기’ 이야기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가. 현실과 허구를 넘어선 꿈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계속해서 꿈꿔온 자가 들려준다는 건 관객에게도 꿈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 <빅 피쉬>에서 ‘윌’이 어렴풋하게 ‘에드워드’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는 노년의 그와의 대화보다 젊은 날 그의 이야기 자체에 있다. 삶은 이야기의 연속이고 그 누구의 것이든 저마다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갖고 있다. 무엇을 소재로, 누구를 화자로, 어떤 이유로 이야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아주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생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사람의 생이 완전히 사실 그대로인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자라남에 따라 아버지는 줄어들었다. 이런 논리라면 언젠가 나는 거인이 될 것이고 에드워드 블룸은 너무나 작아져서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었다.”

-다니엘 월러스, 앞의 책, 189쪽.


영화 <빅 피쉬>는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플래시백의 형태를 쓰지 않고 현실의 형태로 기억을 표현한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재구성된 현실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야기는 알고 있다. <빅 피쉬>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왜 판타지인가’에 대해 팀 버튼은 이렇게 답한다.”라고 한줄평을 썼다. 과연 이야기 없이 살 수 있는, 살아지는 삶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연못에서 강을 건너 바다로 나아가며 큰 물고기가 된다.


영화 '빅 피쉬' 국내 재개봉 포스터

https://www.netflix.com/kr/title/600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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