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May 12. 2021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 리뷰

제목과 달리 ‘찬실’(강말금)에게는 복이 없다. 첫 장면부터 무거운 것을 이고 지고 높은 언덕길과 빼곡한 계단을 오르는 찬실이. 몇 년을 PD로 일했는데 다름 아닌 제작사 대표라는 사람한테 예술 영화 감독이 하는 작품이니까 PD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나 듣는 찬실이. 오즈 야스지로 영화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다가 그 사람 영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지루하다는 말도 듣는 찬실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는 그러나 그런 ‘찬실’을 ‘복도 지지리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주인집 할머니(윤여정)는 그 나이에 시집도 안 가고 뭐 했느냐고 묻다가도 이내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찬실’에게 “비워내야 또 채워낼 수 있지.” 같은 진심 어린 말도 해준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지만 ‘사람도 꽃처럼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같은 시를 써내는 사람이다.) 함께 스태프로 일했던 후배들은 집에 전구가 떨어진 날 다 같이 찾아와 어두운 밤길을 동행하는 것으로 묵묵히 응원을 건넨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한 번쯤 본 적 있을 흔한 영화처럼 들린다면, 이제 ‘장국영’ 이야기를 해볼까. ‘찬실’은 어릴 때 장국영이 나오는 홍콩 영화를 좋아했고 MBC 라디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좋아해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를 소개한 회차를 테이프에 녹음해 간직하는 사람이다.


그런 ‘찬실’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장국영’을 선물한다. 아니, 선물한다고 하는 게 맞을까. 배우 김영민이 연기한 ‘장국영’은 당연히 ‘진짜 장국영’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찬실’에게만 보이고 가끔 ‘진짜 장국영’처럼 옷도 입고 그 나라 말도 따라하고 연애 조언 비슷한 것도 해준다. 소위 귀신인 캐릭터지만 물리적인 형체가 있고 ‘인간적’인 이 인물은 등장하는 매 장면마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지만, 동시에 어떤 영화 한 편, 아니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아끼는 관객에게는 조금 특별한 감정을 안겨주기도 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영화 안의 세계라면 내게는 몇 번이나 봐서 훤히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어 가장 안전한 세계이기도 했다. <토이 스토리>의 ‘버즈’는 언제나 “To Infinity and Beyond!”를 외치며 한쪽 손을 뻗었고 <엑스맨>의 ‘프로페서 X’는 언제나 엑스맨들의 지도자였으며 <캐롤>의 ‘캐롤’은 언제나 ‘테레즈’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바라보았다.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는 언제나 “가면서 결정하자”라며 엷은 웃음 지은 채 운전대를 잡았다. <패터슨>의 ‘패터슨’은 어느 날이든 오전 여섯시에서 여섯시 반 사이에 일어났고 시를 썼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아이언맨’은 언제나 “I'm Ironman.”이라고 외쳤다. 단 한 편만 고를 수 없어 떠오르는 이 영화 저 영화들을 다 가져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는 또 언제나 이렇게 말해줬다. “울고 싶을 때는 조금 울어. 그리고 해가 뜨길 기다려. 해는 언제나 뜨니까.”라고. (“Well, you cry a little, and then you wait for the sun to come out. It always does.”) 전부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끝났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언제나 끝이 있었고 극장 문을 나서든 TV를 끄고 노트북 화면을 덮든 영화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있었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고 바라는 이야기를 대신 해주었다. 모든 게 다 변하지만 가끔은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점을 영화가 말해주었다. 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다고 일깨워주었다.


홍콩 영화를 잘 알지 못하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도 아닌 내가 ‘찬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체험하고 거기에 아파하고 좌절하면서도 그걸 선뜻 포기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라면 나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걸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꺼내주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비록 내가 믿고 싶고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이것저것', '이상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라져버리고 변하고 되돌릴 수 없을지라도, 내가 믿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을지라도,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거기 영화도 있어요.”라고 말해볼 수 있게 만든 게 결국 영화였고, 그 영화들의 세계와 감각을 사랑하며 웃고 울었던 매 순간의 '나'였듯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무심한 듯 단단하고, 나약한 듯 무너지지 않으며, 서투른 듯 ‘아무렇게나’와 ‘아무거나’ 같은 것들의 차이를 아는 영화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오늘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박수치고 안아주고 말 걸어주는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듯, 달이 기울고 다시 차듯, 영화가 끝나고 음악도 끝나지만 넘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게 삶이라는 걸 긍정하는 영화는 꽤 밝고 따뜻하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메인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 및 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이야기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