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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3. 2021

그곳은 좌우를 모두 살핀 뒤에야 비로소

영화'노매드랜드'(2020)의 여정이 향하는 방향

<노매드랜드>(2020)의 후반부 내용이 언급됩니다.




영화 <노매드랜드>(2020)에서 ‘펀’의 시선이 프레임 오른쪽을 향할 때 그의 몸 혹은 그의 ‘밴가드’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마음은 오른쪽을 향하지 못한다. 그러나 ‘펀’이 마침내 프레임 왼쪽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미래가 될 현재를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이 된다. ‘펀’이 운전하는 숱한 장면들에서 관객은 그의 오른쪽 얼굴을 본다. ‘펀’이 스왱키와 데이브를 각각 배웅할 때 그는 프레임 왼편에 선 채 프레임 오른편의 멀어져 가는 캠핑카의 모습을 본다. 주인 없이 남겨진 개를 맡지 않기로 하고 아마존 캠퍼포스를 떠날 때 ‘펀’은 프레임 오른편으로 걸어 나간다. 언니 돌리의 집에서도 그는 작별한 뒤 프레임 우측으로 빠져나간다. 데이브 가족의 집에 머물고 난 아침, ‘펀’은 저녁 만찬을 함께했던 식탁에 잠시 앉았다 마찬가지로 프레임 우측으로 일어선다. 직전 장면에서 침대 대신 차에서 밤을 보낸 ‘펀’은 담배를 문 채 프레임 왼편에 있는 집을 바라보고 있다. 데이브의 제안을 뿌리치고 떠나기로 한 상태로. 지금 하고 있는 궁리는 이 영화가 ‘펀’의 여정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지에 관한 것이다.


‘펀’이 배웅하는 인물들 중에는 린다 메이도 포함돼 있는데 앞서 그를 거론하지 않은 건 린다 메이가 타고 떠나는 차량은 프레임 안에서 ‘펀’이 서 있는 곳의 왼편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다른 유랑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 때도 ‘펀’은 항상 오른편을 향해 멀어져 가는 그들을 프레임 왼편에서 본다. 린다 메이가 예외인 건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이 아닌 제작자이기만 했던 당초 기획 단계에서는 이야기 중심을 린다 메이로 삼을 예정이었던 점과 관련한 것일 수 있다. 초보 노매드가 된 ‘펀’에게 린다 메이는 죽을 결심을 번복했던 과거를 들려주고 밥 웰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등 다른 이들보다 더 긴밀한 유대를 형성한다. (그가 세탁실에서 ‘펀’과 함께 퍼즐 조각을 맞출 때 프레임 왼편을 향하고 있는 쪽은 ‘펀’이다) 영화의 종국에 ‘펀’이 향하는 여정의 방향도 린다 메이의 위치와 전혀 동떨어진 쪽은 아닐 것이다.


석고 공장 폐쇄 이후 ‘펀’은 엠파이어를 떠나 노매드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거길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을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라고 말하는 것도 ‘홈’은 물리적으로 아직 시간과 먼지가 쌓인 그곳에 있어서일 것이다. 그는 노매드로 살기를 결심했다기보다 자신이 노매드가 될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해보기로 하고 몸을 재촉해 여정을 나섰다고 해야 하겠다. 린다 메이나 데이브 등 다른 이들의 여러 권유나 제안에 반응하는 그의 모습은 어김없이 한 차례의 거절이나 그에 상응하는 망설임이 따른다. <쓰리 빌보드>(2017)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가면서 결정하는” 인물이었다면 <노매드랜드>에서의 그는 ‘한 번은 사양하고 나서 두 번째에 가서야 겨우 결정한 뒤’에야 비로소 움직이는 사람이다. 왼쪽으로 걸을지 오른쪽으로 걸을지는 가면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결정해두고 가야 하는 것이다.



방향 전환의 결정은 ‘펀’이 자신이 일하고 살았던 엠파이어를 재방문한 뒤에 일어난다. 그건 몸만 간신히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와 그는 과거를 한 번 더 마주한 뒤 지난날을 애도하고 그것을 발판 삼는 일이다. 미리 짚자면 이 결정은 남들이 가는 오른쪽으로 움직여보았으나 자신이 정착도 유랑도 아닌 중간의 상태에 있었음을 확인한 뒤에야 정말로 유랑을 시작하기 위한 결정이다. 왼쪽을 향하는 일은 곧 자신의 상태를 마주하는 일이다. 프레임 좌측에서 우측으로의 이동이 순행적이라면,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과 관련 있을 수 있다면 우측에서 좌측으로의 이동은 비순행적이다. 과거에서 현재로가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의 회귀다.


수많은 ‘오른쪽으로 향하는’ 여정들과 구별되는 ‘왼쪽으로 향하는’ 여정이 ‘펀’에게는 과연 어떤 것인가. 그가 남편 보와 함께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을 둘러본 뒤 뒷문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 프레임 안쪽을 향해 걷던 ‘펀’의 뒷모습은 몇 초 뒤 옆모습이 되고 이제 방향을 바꿔 프레임 왼쪽을 향한다.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이 방향은 좀 더 생각할 여지가 있다. 단지 일상적으로 우리가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이미지를 좀 더 익숙하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그 반대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가 아니다. 클로이 자오와 조슈아 제임스 리차즈의 시선이, ‘펀’이 향하는 방향을 의도적으로 그리 설정한 것처럼 보여서다.


옛 사무실에서 ‘펀’이 눈물을 흘릴 때 그는 프레임 중앙으로부터 왼편에 서 있다. 스왱키를 배웅할 때도 울먹였지만 영화가 그의 눈물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밥 웰스로부터 위로이자 조언과도 같은 메시지를 들은 이후다. 과거로부터 떠나오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들은 뒤 ‘펀’은 창고에 남아 있던 집기들을 모두 처분하고 비로소 엠파이어를 둘러본 뒤 그곳을 완전히 떠난다. 영화 마지막에 ‘펀’이 탄 밴가드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장면은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것들과 거의 구별하기 힘들다. 어떤 장면에 있어도 이질적이지 않을 만큼. 그러나 이 라스트 신이 바로 거기에 위치할 수 있는 건 ‘펀’이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모두 향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펀’은 노매드가 되었고, 프레임 너머의 세계는 어디든 ‘노매드랜드’가 될 것이다.



*인스타그램@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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