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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3. 2016

취해 있던 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최근 몇 년을 보며

<아메리칸 허슬>(2013)의 강렬한 첫 장면. 배가 불룩하게 나온 '어빙'(크리스찬 베일)은 열심히 빈 머리숱을 가리기 위해 단장하고 있다. 또 다른 장면. 한 파티에서 '어빙'은 듀크 엘링턴의 'Jeep's Blues'의 도입부에 심취해 있고, '시드니'(에이미 아담스)는 그의 옆에 앉아서 '어빙'의 그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에 빠진다.


<아메리칸 허슬>(2013)


데이빗 O. 러셀 감독은 그렇게 소수의 몇몇 장면들만으로도 캐릭터를 관객에게 단번에 주입(이라는 표현조차 썩 적절하다 여겨지지는 않을 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효과적으로)시키는 재주를 꽤 타고 났다. 그것이 단지 크리스찬 베일이 살을 찌우고 분장을 한 채 등장하기 때문도 아니며, 에이미 아담스가 자신의 가슴골을 드러낸 의상을 영화 내내 소화했기 때문도 아니다. 고민 없이 대충 연출하는 감독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치열한 탐구가 있었기 때문이며, (다른 영화들이 고민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전작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을 통해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과도 호흡을 이어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메리칸 허슬>의 다음 작품이었던 <엑시덴탈 러브>는 그다지 '데이빗 O. 러셀의 작품'으로 칭하고 싶지는 않다. 제작 과정에서 그가 하차하고 다른 감독의 이름으로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했으며, 마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맡아서 강제로 한 것마냥 작품의 색깔도 너무나 이질적이고 형편없다. 제작 과정의 말썽이 고스란히 작품에도 드러난 사례이나, 그럼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갔으니 어떤 작품이었는지 정도는 언급해야겠다. 작은 마을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서빙 일을 하는 '앨리스'(제시카 비엘)는 어느 날 사고로 머리에 못이 박히는 부상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떠들썩한 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다. 코미디의 노선이 뚜렷하지 못한데다가 중심축이 없어 보이는 전개, 게다가 제이크 질렌할을 비롯해 빌 헤이더 등 거의 모든 배우들이 마치 하기 싫은데 억지로 출연한 것처럼 보는 관객을 어리둥절케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마저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작품 진열장에 나름대로 놓아둘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은 상처나 결함이 있는 인물이 또 다른 비슷한 누군가로 인해 그것을 해소하거나 전환점을 마련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다.


<조이>(2015)


어쨌든 그 흑역사 하나를 거쳐 데이빗 O. 러셀 감독은 미국의 발명가 '조이 망가노'의 실화를 다룬 <조이>를 통해 제니퍼 로렌스, 로버트 드 니로, 브래들리 쿠퍼와 또 한 번 앙상블을 시도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사연 많고 성격 모난 두 남녀가 부딪히며 주고받는 대사들 간에 자연스레 둘의 캐릭터가 형성되었음은 물론 이야기의 전개도 무리 없이 서로로 인해 각자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구조로 향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허슬>은 명목상 '어빙'과 '시드니'가 주인공이기는 했지만 그 외 제니퍼 로렌스, 브래들리 쿠퍼, 제레미 레너가 각각 연기한 캐릭터까지 합해 다섯 인물들 간 벌어지는 '발끝 휘날리는' 사기극이 영화의 상영 시간 내내 동력을 잃지 않았다.


<아메리칸 허슬>(2013)


반면 <조이>는 구조적으로만 보면 가정환경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한 주인공이 뒤늦게 자신의 목표를 찾고 이어가는 이야기 정도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사실상 제니퍼 로렌스 단독 주연인 데다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사의 합보다는 '조이'의 감정과 내면만이 영화를 이끈다. 그 점을 일찍부터 모르지 않았을 데이빗 O. 러셀은 <조이>의 평범하고 식상해질 수 있는 '인생역전 성공 스토리'에 변화를 꾀해 성공의 이면을 해부하기를 시도했다. 이를테면 '조이'의 이복 자매와의 경영권 분쟁이라든가, 손에 물 묻히지 않고도 물기를 뺄 수 있는 밀대 걸레가 홈쇼핑에서 대박을 터뜨린 이후 벌어진 저작권 다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이야기 전체를 바꿔놓을 정도는 아니어서, <조이>의 후반부를 지탱하는 것은 연출보다는 얼핏 배우의 힘이 더 큰 것처럼 여겨진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부터 이어진 제니퍼 로렌스의 명연기는 물론 <조이>에서도 빛난다. 데이빗 O. 러셀의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가 아무리 뛰어나고 멋들어져도 내 느낌에는 인물보다는 언제나 상황과 환경이 영화를 만들어왔다 여겼는데, <조이>는 인물이 우선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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