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哭聲), 2015)>, 나홍진
스타 캐스팅(만)을 앞세워 단타성 기획으로 일관해온 최근의 몇몇 한국영화들에 단단히 일침을 가하는 작품. 조금은 뜬금없는 연결일 수 있으나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작품은 공수창 감독의 <GP506>(2008)이었다. 결말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유출하는 것을 뜻하는 '스포일러'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실제로 그렇다)였고, 장르적 도상에 빼어날 만큼 충실했던 작품에서이기도 했다. (다만 <GP506>에 비해 <곡성>은 장르와 플롯을 모두 놓치지 않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유머와 스릴과 공포를 지극히 자연스럽게 넘나들기까지!) 또한 누가 범인이고 사건의 전말이 어땠는지를 조합하는 것이 불필요한 여러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제한된 정보와 극한의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본연의 속내를 갈가리 파고든다. 간혹 정도를 넘어선 달아오름이 배우의 얼굴에서 느껴지기도 하지만, 주연과 조연 가릴 것 없이 고르게 몰입도를 배가해주는 한편 음악과 촬영도 뛰어나게 사용된다.
감독의 전작들의 주인공과 '종구'(곽도원)는 캐릭터의 특성이 다소 다르다. 특유의 '딸바보스러우면서 보기보다 유약한' 성격 탓에 관객을 쉽게 무장해제 시킨 채 코미디까지 연출해낸다. 게다가 나머지 캐릭터들은 행동의 동기나 개인사보다는 그저 존재감을 충실히 쌓아가는 편에 가깝다. 관객은 앞뒤를 끼워맞추며 꼬인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들 '종구'처럼 제한된 정보와 선택지 속에 불확실한 의심만 키워갈 뿐이다.
훌륭한 연출가는 많지만 뛰어난 작가 겸 연출가는 많지 않다. 게다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자신의 작가주의를 100% 발휘할 수 있는 감독도 더더욱 귀하다. <곡성>은 스릴러로서 너무나 완벽하고 지독하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황해>(2010) 이후 모든 시간을 오로지 이 영화를 위해 투자했다고 해도 수긍할 만큼, 치밀하고 무섭도록 공들인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의 각본을 직접 썼다.) 이제 '너무'라는 말을 긍정 표현에도 가져다 쓸 수 있지만, 스릴러로서의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 극단적인 체험도 탓에 15세 관람가 심의가 가능했다는 것이 의아한 작품이다. (대체로 한국영화의 심의는 성적 표현에 대해서는 엄격하나 폭력성이나 자극성에 대해서는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껏 한국영화 포스터에서 본 카피 중 가장 완벽하고 영화와 정확히 부합하는 카피의 발견("절대 현혹되지 마라")이기도 하다. 그저 거리를 둔 채 다음 장면을 기다릴 뿐이다. 독한 영화를 보려면 관객도 독해져야 한다. 뛰어난 각본에도 불구, 관람하면서 내용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독한 준비만 있으면 된다. 스릴러 장르 위 나홍진이라는 상위 장르는 점차 단단하고 치밀하게 완성돼 가고 있다. (★ 9/10점.)
<곡성(哭聲), 2015)>, 나홍진
2016년 5월 11일 개봉, 156분, 15세 관람가.
출연: 곽도원, 천우희, 쿠니무라 준, 황정민, 장소연, 김환희, 허진, 조한철, 김도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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