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머리에 맴도는 생각들을 잘 정리할 수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짜 놓은 답처럼 방법론을 만들어둔 것은 아니기에 결론은 ‘영화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쓴다’라는 식으로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한 편의 작품을 보고 나서 떠오른 것들을 끄집어내고 정리하는 나름의 규칙 혹은 과정은 있는 것 같다. 2019년 여름 개봉한 조정석, 윤아 주연의 영화 <엑시트>의 예를 들어 먼저 설명해보겠다. 먼저 대강의 배경과 상황은 이렇다.
<엑시트>는 대학 졸업 이후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해 집에서 구박을 받는 ‘용남’(조정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어느 웨딩홀 연회장에서 어머니의 칠순 잔치가 있던 날, 누군가 고의로 유포한 유독가스가 도시 전체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높은 곳으로, 건물 옥상으로 대피한다. 일종의 ‘화생방’과도 같은 상황. 시민들이 큰 혼란에 빠진 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가운데, 대학 때 산악 동아리 활동을 한 경험을 살려 ‘용남’과 웨딩홀 직원이자 ‘용남’의 대학 후배 ‘의주’(윤아)는 생존을 위한 기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영화 '엑시트' 스틸컷 이 영화는 도시에 예고 없이 찾아온 재난이자 테러와 같은 상황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도처에는 활력을 잃지 않는 유머 감각과 낙천적인 태도, 나아가 삶을 대하는 희망적이고 위안을 주는 시선이 깔려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극 중 사람들이 처한 생명의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에 노심초사하면서도 영화가 한 번씩 툭툭 던지는 코믹한 말과 행동들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한 오락 영화인 동시에 당신의 삶이 쓸모없지 않다는 묘한 희망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감상을 어떻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 그 과정을 단계별로 쓴다면 대체로 아래와 같다.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본다. (메모)
그것들 중 글에 담길 만한 것들을 고른다.
“어떤 영화였어?”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요소로 발전시킨다.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거나 중요하게 느껴졌던 걸 글의 주제로 삼는다.
더 표현할 만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순서 무관) 감독의 인터뷰나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자료, 원작 소설 등 외부 레퍼런스를 조사, 활용한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걸 나열해보는 일이다. 영화 한 편에 어떤 요소가 있나? 장면, 캐릭터, 연기, 촬영, 음악, 음향, 편집, 미술, 의상, 각본, 연출 등등. ‘종합예술’이란 말이 영화에 대해 설명할 때 널리 쓰이는 것처럼 영화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녹아들어 한 편의 작품이 된다. 어떤 영화는 영상미학으로서 촬영과 편집, 혹은 미술 등 시각적 요소가 중요할 수 있고 또 어떤 영화는 배우의 연기와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가 중심이 될 수 있다. <엑시트>에 대해서라면? 내 경우 일단 캐릭터다. ‘용남’과 ‘의주’.
두 사람은 산악 동아리 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한 명은 백수로 구박받고 한 명은 사회 초년생으로 사회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자기 한 몸 건사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재난 상황이 되자 보이는 반응과 그들의 행동. <엑시트>는 ‘Exit’이라 쓰인 비상구 표지판의 이미지처럼 인물들이 내내 달리고 또 달리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건 눈앞의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생존을 위한 탈출의 움직임이다.
영화 '엑시트' 스틸컷
<엑시트>에서 내게 눈에 들어온 장면은 ‘용남’과 ‘의주’가 온갖 위기를 통과해 올라간 어떤 건물 옥상에서, 자신들을 구조하러 온 헬기에 자신 대신 건너편 다른 건물에 갇힌 아이들을 태우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헬기가 자신 대신 저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게 마네킹 등 옥상에 있던 온갖 물건들을 동원하고 급기야 자신들 몸으로 아이들이 있는 쪽을 향해 화살표를 만드는 등 어떤 영웅적 행동을 해낸다. 그래서 나는 2019년 8월 21일에 이렇게 썼다.
(…) ‘용남’과 ‘의주’는 고생 끝에 올라간 어떤 상가 건물 옥상에서 자신들을 발견한 헬기를 기다리던 중, 건너편 보습학원 안에 갇힌 아이들을 본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헬기가 아이들을 구조하도록 유도한다.
영화 <엑시트>가 주는 희망이란 이런 것이다. 선의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한, 잘하면 이 세상은 더 나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암벽등반처럼 취업에 직접 도움이 안 되는 일도 쓸모가 있다는 것보다 더 희망적인 건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누군가의 손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기회가 /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능력들’ (...) 영화의 크레디트가 나올 때 나오는 이승환의 노래 ‘슈퍼히어로’의 가사를 곱씹으며 한 번 더 생각했다. ‘원더우먼’이나 ‘캡틴 아메리카’만 영웅이 되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영웅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는 반드시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이지는 않다. <엑시트>가 삶이 쓸모 있다는 희망을 주는 엔터테인먼트일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나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라서다. 삶의 갖가지 재난 속에서, 거기 찾아온 극한의 더 나쁜 재난 속에서, 나조차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식의 흐름을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건 쉽지 않다. 그것은 모두가 나의 가능성을 ‘거기까지’라고 할 때, 스스로 그것을 뛰어넘는 일이기도 하다.
위 내용은, <엑시트>에 대해서 느낀 어렴풋한 희망과 낙천의 태도를 기억에 유심히 담은 한 장면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용남’과 ‘의주’가 아이들을 구해내는 장면에서 남은 느낌, 그 장면에서 둘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지, 그것이 영화 전체에 대한 내 감상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사전에 생각해본 바탕으로 위와 같은 글이 나온다. 그러니까, <엑시트>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한다면 내게는 이런 것들이 쓰일 것이다.
오락 영화. 아이들 구하는 장면. 백수. 산악 동아리. 재난. 건물 외벽. 통쾌함. 희망적. ‘슈퍼히어로’(이승환). 위로. 응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도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글로 술술 표현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느끼기로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잘 표현해낸 것이 아니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겪어온 시행착오와 그 과정에서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로 인해 이미 영화를 보는 동안과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쓰기 전, 머릿속에서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채로 글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사전 작업(Pre-writing)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다. 그건 아무 노트를 펼쳐서 낙서를 하든 영화를 함께 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든 아니면 충분한 자료 조사를 하면서 머릿속에서 생각 정리를 하든 마찬가지다. 사전 작업은 말 그대로 사전 작업이지 그것 자체가 글은 아니기 때문에, ‘잘’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일단 생각나는 것들 무엇이든 아무거나 다 나열해보고 그것들 중 일부는 버리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떠오르는 대사 한마디, 결말에서 주인공이 하는 어떤 행동, 귀를 사로잡았던 어떤 사운드트랙, 영화의 화면비율, 주인공이 자주 입는 의상이나 버릇 같은 것들.
위와 같은 것들은 영화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어차피 그건 불가능하고, 내 경우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총 여덟 번 관람한 작품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모든 세부를 다 떠올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스스로도 여러 회에 걸쳐 글을 썼기 때문에 ‘모든 것’은 아니어도 ‘많은 것’을 기억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 얘기다.)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그 영화에 대해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다 풀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그 영화에 대해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어떤 것을 문자 언어의 형태로 간직하는 일에 가깝다. 이것저것 다 기록하려고 하다 보면 주로 내용 정리가 되기 쉽고, 많은 경우 사건 전개를 요약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내용 요약을 잘하는 것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엑시트>에 대해 말하자면, 내게는 ‘용남’과 ‘의주’가 옥상에서 건너편 건물 안 학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구해내는 장면 하나를 기억하는 걸로 충분하다.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갑자기 영웅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슈퍼히어로가 되는 게 아니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차마 눈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위험을 외면하지 못하고 ‘뭐라도 하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암벽 등반 같은 거나 열심히 했으니 취업도 못 하고 그러고 있지 않냐는 핀잔을 일상처럼 듣던 인물이 재난 상황에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경험으로 타인에게 어떤 도움을 제공하는 장면은 관객 각자의 삶도 저마다의 가치가 있고, 우리가 눈앞의 절망을 두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세상에 어떤 힘이 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그것이 여름철 성수기에 개봉해 9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보는 오락 영화가 ‘재밌게 웃고 즐기는’ 가운데 관람 후에 남기는 잔상이다. 이렇게 정리해보는 순간, <엑시트>는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뒤에도 내게 이와 같은 의미로 남은 영화가 된다. 그랬다고 적어둔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