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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06. 2021

여름날 울림으로 다가오는 섬세한 음악 영화

영화 '코다'(2021) 리뷰

조업을 하는 아빠 '프랭크'와 오빠 '레오'를 도와 새벽 일찍 바다에 나가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비몽사몽 수업을 듣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루비'에게 어느 날 교내 합창단에 들어갈 기회가 찾아온다. 동아리 신청을 하는 시즌. 같은 학교의 '마일스'에게 순간적으로 이끌린 것인지, '루비'는 그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간다. 같이 있던 친구 '거티'의 반응이 중요하다. "네가 노래를 해?"


영화 ‘코다’ 스틸컷

1.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재능


사소하게 지나가는 초반부이지만 '거티'의 저 반응은 이 영화에서 '루비'가 노래를 하게 되는 이유와 직결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너 노래 잘해?", 다른 하나는 "무슨 노래 할 건데?"다. 전자는 노래 실력을 묻는 것이고 후자는 (장르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묻는 것이다. 노래와 음악을 자기표현의 방식이라 한다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이 이야기는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2018)에서 이미 탁월하게 '이야기' 된 바 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내 방식대로 들려줬는데 통한다는 것이야말로 특별한 재능이에요." '앨리'(레이디 가가)를 처음 만난 순간 '잭슨'(브래들리 쿠퍼)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매니저 일을 그만두겠다는 이복 형에게는 "형은 할 이야기가 없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요컨대 1937년 원작의 세 번째 리메이크인 <스타 이즈 본>은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이어야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해낸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가 된다고 말해준 영화다. 지금 말할 영화 <코다>(2021)에 대해 쓰면서 <스타 이즈 본> 이야길 꺼내는 이유는, <코다> 역시 리메이크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박스오피스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주연 배우 루안 에머라에게 세자르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안겨준 <미라클 벨리에>(2014)가 원작이다.


<미라클 벨리에>가 좀 더 대중적이고 밝은 화법으로 만들어졌다면, 이를 리메이크한 션 헤이더의 <코다>는 마음을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보는 탄탄하고 안정적인 연출과 각본이 돋보인다. 조니 미첼이나 데이빗 보위, 마빈 게이, 타미 테렐 등이 직, 간접적으로 중요하게 인용되는데 거의 오리지널 스토리에 가깝게 이 영화가 다가오는 이유는 제목(CODA)이 말하듯 농인과 농인 가족, 청인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 덕분일 것이다. 가령 중반 이후 '루비'가 공연하는 학예회 시퀀스에서 일부 장면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부모의 시점에서 관객 역시 숨 죽인 채 소리 내지 않고 지켜보게 만든다. 이때 '루비'가 '마일스'와 함께 부르는 곡 'You're All I Need to Get By'는 초반부만 들리는데 이 장면은 공연을 마친 밤 트럭에 앉은 아빠 '프랭크'를 향해 그 곡을 루비가 직접 되풀이해 불러주는 것으로 의미가 완성된다. 영화 속 로시 가족들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에밀리아 존스를 제외한 말리 매트린, 트로이 코처, 다니엘 듀런트는 실제로 농인이다.


"There are plenty of pretty voices with nothing to say.
Do you have something to say?"


합창단에 들어온 '루비'를 지도하는 음악 교사 '미스터 V'는 위와 같이 말한다. 좀 더 자의적이고 직설적으로 번역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할 이야기도 없으면서 목소리만 예쁜 사람들이 넘치는데, 넌 할 이야기가 있어?" 그렇다면 '루비'에게는 할 이야기가 있었나? 이건 '루비'의 가족이 농인이라는, 다시 말해서 '루비'가 'CODA'(Children of Deaf Adult)라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영화 ‘코다’ 스틸컷

2. 듣는 주인공과 듣지 못하는 가족들


농인 가족에서 홀로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 '루비'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어를 배웠고 다른 사람들과 가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역할까지 해왔다. 그가 아빠와 오빠를 따라 조업에 나가는 것도, 어선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동승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기도 하다. '루비'에게는 자기 이야기를 할 시간보다 가족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대신 (통역) 할 시간이 우선했다. 가족들이 손짓 몸짓 표정으로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루비'는 항상 그걸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는 역할이었고,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일치감치 포기했으면서도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고 가족이기 때문에 바다에 함께 나가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루비'에게 노래는 (듣지 못하는) 가족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기 이야길 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경로였고, 듣지 못하는 가족들 곁에서 자라 (듣는 가족들 곁에서 자란 이들과는 소리와 음성 언어를 다른 방식으로 접했을 것이므로) 학교에서 '루비'는 '이상하게 말하는 애'로 놀림받아야 했다. 그런 '루비'에게, 합창단이 찾아왔고 '마일스'가 찾아왔다.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2016) 연출/각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2013-2018) 각본 등을 통해 션 헤이더 감독은 일찍이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왔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이 유년을 보낸 매사추세츠의 어촌을 배경으로 원작의 이야기를 옮겼다. 또한 네 가족을 연기한 배우 중 에밀리아 존스를 제외한 세 명이 실제로 농인이기에 감독 자신도 (현장에 수어 통역사가 있었지만) 직접 수어를 배웠다.


(제작 과정에서 션 헤이더 감독은 <코다>와 마찬가지로 매사추세츠 주 배경의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의 연출/각본을 맡았고 어부들을 위한 NGO인 'Gloucester Fishermen’s Wives Association' 회원이기도 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도움을 얻었다. <코다>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글로스터'(Gloucester)라는 같은 로케이션을 일부 공유하기도 하는데, 내 추정으로는 '레오'가 맥주를 마시다 잠시 말썽을 일으키는 술집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리'(케이시 애플렉)가 다른 손님에게 주먹을 날리던 장소와 동일하다.)


영화 ‘코다’ 스틸컷

3. 듣는 쪽과 듣지 못하는 쪽, 'Both Sides Now'


토드 헤인즈의 <원더스트럭>(2017)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밀리센트 시몬스를 비롯해 청각 장애가 있는 배우들의 영화 속 활약을 <코다> 외에도 물론 찾아볼 수 있지만, <코다>가 특별해지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데에서도 비롯한다. 언급한 바와 같이 '루비'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루비'가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한다. 다만 학예회에서 '루비' 노래를 듣는 다른 청중들의 모습을 통해, 악기로 인한 울림을 통해, 그리고 '프랭크'의 경우 '루비'의 목 주변에 직접 손바닥을 대는 행위를 통해, 가족들은 '루비'의 노래를 듣는 대신 느낀다.


청각 장애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치료되지 않는 한, '루비'의 가족들은 앞으로도 그의 노래를 듣지 못할 것이다. '루비'가 학예회에서 무엇을 불렀든, 버클리 음대에서 무엇을 배우고 노래하든, 나아가 앞으로 어떤 음악 커리어를 걷게 되든 간에 그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코다>의 노래는 청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 불리지 않는다. "농인 가족을 주연으로 하면서 청인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 션 헤이더 감독의 말처럼, <코다>는 (물론 '루비'가 주인공이지만)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각자의 사연과 내면까지 충실하고 세심하게 담아낸다.


영화 ‘코다’ 스틸컷


이런 면에서 사랑을 주는 쪽과 받는 쪽 양쪽에서 보게 되었다고 노래하는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가 인용되는 것도, 어떤 일이 닥쳐와도 (당신과) 함께여서 그것을 기꺼이 맞이하겠다고 노래하는 마빈 게이&타미 테렐의 'You're All I Need to Get By'가 인용되는 것도 <코다>의 선곡이 무심하지 않다는 걸 반증한다. 뿐만 아니라 밤하늘 별을 보면서 '루비'와 아빠 '프랭크'가 나누는 대화를 떠올리면 학예회 때 편곡 합창되는 데이빗 보위의 'Starman' 또한 납득되는 선곡이다.



4. 노래의 끝, 이야기의 시작


지금껏 '루비'와 '마일스'가 듀엣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로맨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존 카니의 <싱 스트리트>(2015)에 이어서 퍼디아 월시-필로는 비중 자체는 크지 않지만 '루비'의 서사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음악 교사 '미스터 V' 역시 버클리 음대 오디션을 마련해줄 뿐 아니라 멘토로서 '루비'가 자신감을 갖고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응축된 감정을 소리로 외면화 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단어 'coda'는 꼬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해 악곡의 종결부를 뜻하는 말이라 한다. 영화 <코다>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루비'의 진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가 끝난 뒤의 '루비'의 삶이 그의 음악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코다>는 음악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치게 된 '루비'는 물론 그 가족들을 있는 힘껏 다정하게 응원해준다. <코다>가 국내 개봉하는 무더운 여름날은 한 해의 중반을 지나는 무렵이기도 하지만 도처에 초록의 에너지와 생명력으로 가득한, 어쩌면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관객 각자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볼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겠다. 선댄스의 겨울을 지나 우리의 여름에 찾아온 <코다>가 새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노래가 끝나고 난 뒤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와 여운이 시작되는 것처럼 좋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코다' 국내 티저 포스터

<코다>(CODA, 2021), 션 헤이더 감독

2021년 8월 31일 (국내) 개봉 예정, 111분,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 에밀리아 존스(루비), 트로이 코처(프랭크), 말리 매트린(재키), 다니엘 듀런트(레오), 퍼디아 월시-필로(마일스), 에이미 포사이스(거티), 에우헤니오 데르베스(미스터 V)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영화 ‘코다’ 스틸컷


*선댄스영화제 이후 애플은 <코다>의 애플 TV+ 배급권을 2,500만 달러에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선댄스 역사상 최고가라고 한다.

*<코다> 국내 예고편: (링크)


8월 3일 VIP 시사회에서 관람,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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