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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13. 2021

‘일반인’이 아닌 ‘비 장애인'의 시선과 태도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와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리뷰

장애인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접하는 환경 요소의 많은 부분은 ‘비 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불편과 다름을 헤아리기 쉽지 않아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 매체에서 장애인을 주요 인물로 다루는 경우 기대와 함께 우려도 생긴다. 자칫 장애인‘비 일반인’ 혹은 ‘비 정상인’인 것처럼 구분하는 시선으로 그려내지는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섬세하고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와 탄탄한 드라마, 선을 넘지 않는 유머감각과 뭉클한 메시지를 버무려 호평받은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장애를 희화화하거나 배려가 부족한 캐릭터 묘사로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건 그만큼 연출진과 작가진의 의도와 관계없이 장애인을 대하는 보다 면밀한 관찰과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9년 개봉한 두 편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와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를 최근 다시 봤다. 실화를 기반으로 극화한 <나의 특별한 형제>와 다큐멘터리인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에는 모두 지체장애인 인물이 나온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세하’(신하균)는 어릴 때부터 친척에 의해 맡겨진 보호시설 ‘책임의 집‘에서 ‘동구’(이광수)를 만나 제목처럼 고락을 함께한 유사 가족이 된다. ‘세하’는 지체장애가 있어 얼굴 외에는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고 ‘동구’는 거동에 지장이 없고 수영을 잘 하지만 지적장애가 있어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고 도움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눈여겨볼 장면은 휠체어에 탄 어린 ‘세하’(안지호)가 벼랑 아래 호수에 빠지는데 이를 어린 ‘동구’(김현빈)가 구하는 대목이다. ‘책임의 집’에서 지내는 수많은 장애 아동들의 가족들과 어른들이 있었지만 ‘세하’를 살게 한 것은 ‘동구’였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도입부터 두 사람이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형제’일 것을, 누군가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도 오히려 약자이기에 서로를 끌어안고 의지할  있는 ‘가족임을 내비친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좌),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우) 스틸컷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는 지적장애가 있는 기타리스트 김지희 씨의 일상을 따라간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우연한 계기로 기타 연주에 관심을 갖게 된 그를 부모는 적극 지원해 기타 교습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기타 연주에 몰입하고 흥미를 붙여가면서 지희 씨는 크고 작은 여러 공연 무대에 선다. 악보를 읽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그의 연주는 강사로부터 섬세하고 꼼꼼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하고, 일부 대회에서는 상을 받는 모습도 비춘다.


그러나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지적장애를 딛고 기타리스트로 거듭나는’ 과정이 아니라 기타 연주에 취미와 실력을 붙이기 시작한 4년 차 기타리스트의 평범한 일상이다. 오히려 영화의 시선은 지희 씨를 ‘지적장애인 기타리스트’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기타리스트’로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그가 기타 연주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가족과 대화할 때 그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하지만 대답을 재촉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지희 씨는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며 기타를 칠 때는 거의 연주에만 몰입한다. 카메라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지희 씨의 일상을 가만히 지켜본다. 대전에 사는 지희 씨가 어머니의 도움 없이 혼자 서울에 가게 된 상황에서도 관객은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만하지만 카메라는 여유롭다. 스마트폰으로 어머니와 메신저 대화를 하고 유튜브로 다른 기타리스트의 연주 영상을 찾아보는 지희 씨의 모습에서 그를 지적장애인이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커버 연주에 그치지 않고 작곡을 하고 싶어 하는 그를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는 곁에서 응원하듯 지켜봐 준다.


<나의 특별한 형제>와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는 지적장애인을 다룬다는 점 외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의 삶을 묘사하는 데 있어 그들 또한 주체성과 자립심을 가진 성인임을 잊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상에서 나를 포함한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다. 그것이 나의 일이거나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일이 되지 않는 한 말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동구’를 20여 년 전 어떤 사정으로 버린 친모가 찾아오는 대목이 있다. 혈연이자 보호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해 ‘동구’를 집에 데려오는데, 친모의 딸, 그러니까 ‘동구’의 동생은 ‘동구’가 친근감을 표시해 밥을 퍼 내어주는 숟가락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식당을 운영하는 친모는 가게에서 ‘동구’의 돌발 행동에 당혹스러워하고 그를 식당 안 손님들로부터 떨어뜨리기 바쁘다. 나쁜 의도를 내포한 행동이 아니라 해도 비장애인인 그들이 ‘동구‘가 가지고 있는 지적장애에 대해 낮은 이해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 속 어떤 장면에서 ‘세하’는 “불이 나면 119에 신고해야죠. 비장애인은 불이 나면 안 위험합니까?”라고 누군가에게 일갈한다. 어쩌면 인간은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쉽게 상처 받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스스로에게 절망하거나 누군가에게 실망할지 모르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은 누군가를 염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들이 비로소 ‘우리’일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건 나와 타자가 모두 같은 인격체임을 잊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좌),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우) 포스터


*한국장애인개발원 사외보 <디딤돌> 9월호에 게재한 원고입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  강의/모임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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