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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0. 2021

마음에 오랜 기적을 심어주는 일

영화 '기적'(2021) 리뷰

(영주와 봉화의 말씨가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영주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온 한 사람으로서 지역 언어 활용은 만족스러웠고 몇 장면에서는 유년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영화 <기적>은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 건립에 관한 이야기에서 일부 모티브를 가져왔을 뿐 그 자체로 실화 기반인 이야기가 아니지만, 어떤 이야기는 지역적 특수성이 중요한 발판이 된다.

철로만 있고 사람이나 차가 제대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었던 마을. 위태롭게 터널과 교각을 넘나들던 주민들의 행로에 신호등을 놓고 쉴 곳을 만들어내는 일은 몇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했다. 한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할까 봐 무심함을 가장했고, 한 사람은 가족의 모든 아픔이 자기 때문이라 생각하느라 무엇에도 도전하지 못했다. 또 한 사람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꿈을 만들어주는 것이 자기 꿈이라 생각했다.


영화 '기적' 스틸컷

그러니까 기적(奇跡)은 어떤 이의 마음에 기적(汽笛)을 울려주는 일이기도 할 텐데, 이는 누군가를 염려하는 마음 혹은 태도 자체에서 출발한다. <기적>이 보여주는 그것은 삶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을 만큼의 죄책감과 그리움에서 나오기도 하고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밀려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나온다. 투박하지만 마음이 동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사람을 위해 꿈을 꾼다는 일이 어떤 감정을 동반하는 일인지 조금은 이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을 좋아했던 소년이 한 사람에게 겨우 반딧불을 선물할 수 있게 되기까지, 또 한 사람에게 "다녀올게"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꿈을 꿀 수 있게 대신 앞을 바라봐줄 수 있게 되기까지. 거기에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고 그중 상당수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안전하고 편리하고 풍요로운 것들의 가운데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불확실한 것에 도전하고 또 어떤 것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의 가치는 경시되기 쉽다. <기적>의 배경이 1980년대 중후반인 건 우리가 그만큼 오랫동안 그러한 것들을 흘려보내 왔다는 걸 상기하게도 만든다.


영화 '기적' 스틸컷
영화 '기적'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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