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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0. 2021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다시,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리뷰

동명의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는 단지 귀농을 장려하거나 도시로부터 벗어난 자연의 삶을 예찬하기만 하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겨울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되기까지. 사계절의 흐름과 각각의 날씨와 색깔을 담아내는 이 영화의 빛깔과 온도는 자연의 순리로부터 우리 삶의 어떤 정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재료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잘 만든 요리 프로그램처럼 때깔 좋게 보여주는 작품은 많이 있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에서 음식은 식욕을 자극하는 시각적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혜원’(김태리)과 고모는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리고 난 다음날, 줄 지어 누워 있는 벼들을 일으켜 세운다. “이걸 언제 다 하냐”라고 한숨 쉬는 ‘혜원’에게 고모는 “입 쓸 시간에 몸 좀 쓰면 금방 한다”라고 타박한다. 이건 맞는 말이다. 몸이 고될지언정 시간을 들이면 순리대로 마무리되는 일.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며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농부의 마음도 <리틀 포레스트>는 외면하지 않는다. 다음 장면에서 ‘혜원’은 ‘재하’(류준열)의 농장에 찾아가 떨어진 사과들을 줍고 있다. ‘재하’는 사과잼 만들면 맛있다며 떨어진 사과 몇 개를 주워가라고 ‘혜원’에게 권한다.


요컨대 <리틀 포레스트>는 맛있는 식재료가 어찌하여 맛있는 것인지, 그것의 외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수확되기까지 견뎌냈을 인고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배추전, 수제비, 콩국수, 떡볶이, 막걸리, 그리고 감자빵 등에 이르기까지. 그건 주인공 ‘혜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밤 조림이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뜻.”


‘혜원’이 위와 같은 말을 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은 시험에 떨어지고 난 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고향에 왔다. 처음에는 단지 며칠만 머무르다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기 좋은 시골에 머무른다고 해서 몸은 떠나왔지만 도시에서의 걱정거리가 사라질 리는 없었다.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남자친구와도 며칠 연락을 끊고 ‘혜원’이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 더 있었는데, 몇 해 전 수능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혜원’의 엄마는 편지 하나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갔다. 혼자 사는 법을 터득했지만 ‘혜원’은 그 기억을 아직 떨쳐내지 못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밤 조림 이야기는 계절이 바뀌자 자연스럽게 곶감으로 이어진다. “곶감이 벌써 맛있어졌다는 건, 겨울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고시 공부는 성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노력에도 누군가에게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고 원하던 바는 실패로 돌아올 수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작은 숲’이라고 <리틀 포레스트>는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날씨와 계절이 바뀌고 작물을 수확하는 것처럼 확실한 일도 세상에는 있다고. 그러니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잠시 멈추어 주변을 한 번 살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혜원’의 엄마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햇빛과 바람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정말로 ‘혜원’은 어떤 장면에서 정말 “나는 (서울에서 이곳으로)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온 것이었다”라고 스스로 말한다.


"이렇게 주무르다 보면 겨울 쯤에는 진짜로 부드러운 곶감이 되거든.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작중 짧지만 제법 중요하게 지나가는 ‘아주 심기’라는 말이 있다. 이제 더는 옮겨 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인데, ‘재하’가 말하길 지금 ‘혜원’은 아주 심기를 하는 중이라고. 영화 속 생육과 수확의 과정들은 스스로를 지키는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제법 흘러야만 가능할 때가 있는데, ‘혜원’이 엄마가 남기고 간 편지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일도 그렇다. 나만의 작은 숲. 꼭 도시를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속도와 결과에 골몰하지 않고 방향과 과정도 살피는 것. 겨울을 잘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을을 잘 겪어낸 우리도 마찬가지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본 리뷰는 기상청 기관지 <하늘사랑> 2021년 11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kma.go.kr/kma/archive/pub.jsp?field1=grp&text1=skylove&field2=pubGroup&text2=2021#gal_cat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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