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Dec 05. 2021

예술의 경계에서 자유의 의미를 묻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2020) 리뷰

영화 <피부를 판 남자>(2020)는 실제 이야기에서 일부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빔 델보예(Wim Delvoye)가 한 남자의 피부에 타투를 새겨 미술관 전시에 출품하고 그의 사후에는 타투가 새겨진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기로 한 계약을 맺은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빔 델보예는 자기 이야기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으며 <피부를 판 남자>에 카메오 출연도 했다고 한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피부를 판 남자>를 연출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과 제작자 필립 로기(<티탄>, <나, 다니엘 블레이크>, <아네트> 등)가 이 이야기에 주목한 것은 두 가지 화두를 모두 담아낼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어디까지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빔 델보예는 살아있는 돼지에게도 타투를 새긴 적이 있고, 물론 이는 동물권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미술관에서 작품의 일부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되지만 전시용 타투를 새긴 사람의 사후에는 그것을 액자에 담아 영구적인 전시품이 된다는 설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충분하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다. <피부를 판 남자>의 주인공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는 불합리한 억압을 피해서 시리아를 탈출한 망명자다. 레바논을 거쳐 벨기에로 향하며 그는 ‘제프리 고드프루아’(코엔 드 보우)라는 예술가로부터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 되는 조건으로 돈과 자유 등을 얻는 제안을 받는다. 자기 몸이 예술 작품의 캔버스가 된다면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신은 새겨진 예술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된다. 만약 타투를 지운다면, 그 자유는 어디로 가는가?


영화 속에서 이 파격적인 예술 퍼포먼스는 레바논 현지는 물론 ‘샘’이 떠나온 시리아에서도 주목받는다. 여기에 ‘샘’의 연인이자 시리아에서는 상류층에 속하는 ‘아비르’(디아 리앤), 그리고 ‘제프리’와 ‘샘’이 함께하는 전시 일정과 작품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소라야’(모니카 벨루치)까지.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 된 ‘샘’의 행보를 둘러싸고 여러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얽힌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제10회 아랍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에도 일찍이 소개된 영화 <피부를 판 남자>는 모국에서의 억압을 피해 망명한 곳에서 ‘VISA’를 형상화한 타투를 등에 새겨 유럽 곳곳을 누비고 호화로운 생활을 할 자유를 얻는 ‘샘’의 이야기를 통해 능란하게 자유, 예술, 난민 등과 같은 키워드를 담아낸다. 표면적으로는 ‘샘’의 작품이 경매에 부쳐지는 장면 등을 통해서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현대 자본주의적 속성을 (그와 대비되어 인간으로서의 ‘샘’의 존엄성이 훼손되기도 하는 바)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소재, 국적, 장르 등을 초월한 예술의 범주와 경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버나움>(2018) 같은 영화를 떠올려볼까. 난민 문제와 같은 국제 사회적 현안이 영화의 화두가 될 때, 그 영화는 대체로 엄숙하거나 진지해진다. 혹은 그런 가운데서도 생겨나는 휴머니즘적 드라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피부를 판 남자>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사회문제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그것을 길지도 않은 상영시간 안에 녹여내는 화법 때문이다.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작품상 노미네이트 및 최우수 연기상 수상,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노미네이트 등은 그만큼 <피부를 판 남자>가 아랍권을 넘어 국제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유효했다는 걸 보여주는 바이기도 하겠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


튀니지 출신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미 10년 이상의 각본과 연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영화가 국내 극장에 정식 개봉하는 건 <피부를 판 남자>가 처음이다. 만약 사회 문제를 제대로 파고드는 고발적 혹은 휴먼드라마적 성격을 지닌 작품을 원한 관객이거나 혹은 예술의 의미와 경계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하는 파격적인 영화를 원한 관객이라면 <피부를 판 남자>는 직관적인 제목과 달리 둘 사이에서 위치가 조금 모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104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에 비해, 쉽고 가볍게 볼 만한 영화는 아닐 수 있지만 이와 같은 다양성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저마다 정의하는 예술의 의미가 다르고 좋은 영화의 기준이 다르듯, 정치 사회적인 화두를 그려내는 영화의 방식 또한 다양하겠다. 영화 앞뒤에는 액자에 걸린 한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한 비슷한 장면이 각각 펼쳐진다. 시작할 때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작품이 영화가 끝난 뒤에는 비로소 모든 함의로 다가오는 순간. 화려한 볼거리가 있거나 큰 세계관을 다룬 영화만이 시네마의 경험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불완전함마저도 영화를 보는 이유이자 경험의 일부가 아닐는지. <피부를 판 남자>는 그 문을 열어둔다. 관객 각자에게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영화 '피부를 판 남자' 국내 메인 포스터

<피부를  남자>(The Man Who Sold His Skin, 2020), 카우타르  하니야 감독

2021년 12월 16일 (국내) 개봉, 104분,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 야흐야 마하이니, 코엔 드 보우, 모니카 벨루치, 디아 리앤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영화 <피부를 판 남자> 측으로부터 시사회에 초대받아 관람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1.12.02, CGV신촌아트레온)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디즈니+에서 굿즈를 보내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