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리뷰
아마도 기획(혹은 프리 프로덕션) 자체가 먼저였고 그 실현 방안이 나중이었을 것이다. 아니 모든 영화가 다 그렇고 결국은 어떻게 기획과 착상을 '그럴싸한' 비전이 담긴 결과물로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스파이더맨>(2002)이 나왔을 때의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이 나왔을 때의 '피터 파커'의 위치가 같을 수 없듯 하나의 캐릭터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영화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첫 출발선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서 소니 단독의 <스파이더맨> 일 때와 MCU&소니 협업의 <스파이더맨>일 때 둘은 같을 수 없다. 감독을 바꾸고 배우를 달리 해도 독자적 기획이 가능했던 시기의 '스파이더맨'과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그 일부로 자리할 수밖에 없는 시기의 '스파이더맨'은 관람 시점만 다른 게 아니라 그 영화가 당대에 차지하는 의미도 기획에 들어가는 고민도 다르게 된다.
샘 레이미, 마크 웹 시절의 스파이더맨과 MCU 시대의 스파이더맨이 아무리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건 마찬가진데, 결과적으로 이번 작품은 일차적으로 소니의 니즈와 마블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졌고 그것의 실현 방안은 십수 년에 걸친 팬층 전반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물로 느껴진다. 세계관을 상업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멀티버스'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한 발판으로서의 멀티버스라면 기꺼이 환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지.
물론 특정 TV시리즈 캐릭터의 등장과 같이 후속 작품(들)을 위한 노골적 연결점이나 이스터에그처럼 느껴지는 면면이 없지 않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활용과 마블 스튜디오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이걸 예상하긴 어렵지 않았겠다. 그러나 이 대단한 기획자들의 고민과 실행은 차라리 '이 세계 저편 어딘가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근원적인 상상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는 자기 선택을 되돌리고 싶어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사소하지만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을 어떤 사건을 돌아봐야만 했을 테니까. 이 '이야기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일'은 게임이나 소설과 같은 매체로 접할 때보다 그 자체로 시간성에 도전하고 그 자체로 체험에 다가가는 영화 매체일 때 더 강력해진다. 그래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같은 말이나 "애쓰는 중이죠" 같은 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듣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것이 된다.
이 기획이 꽤 성공적이라는 건 개봉 3주차 만에 글로벌 극장 수익 14억 달러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될까. 계속해서 '세계관'과 과거 스파이더맨들의 이야길 했지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고 나면 비로소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모두를 돕는' 히어로로 거듭난 동시에 매 순간 부딪히고 상처를 봉합하고 성장하고 생동하는 캐릭터로 자리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존 왓츠의 '스파이더맨'은 이제 삼부작이 되었지만 비로소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때 그들의 이야기가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상을 극장의 힘을 빌어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 묘하게도 다가올 시간을 맞이할 선물이 된다.
(*참고: 글로벌 누적 극장 수익 -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 8억 8,016만 달러,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11억 3,192만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