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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04. 2022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스파이더맨(들)에게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리뷰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아마도 기획(혹은 프리 프로덕션) 자체가 먼저였고 그 실현 방안이 나중이었을 것이다. 아니 모든 영화가 다 그렇고 결국은 어떻게 기획과 착상을 '그럴싸한' 비전이 담긴 결과물로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스파이더맨>(2002)이 나왔을 때의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이 나왔을 때의 '피터 파커'의 위치가 같을 수 없듯 하나의 캐릭터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영화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첫 출발선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서 소니 단독의 <스파이더맨> 일 때와 MCU&소니 협업의 <스파이더맨>일 때 둘은 같을 수 없다. 감독을 바꾸고 배우를 달리 해도 독자적 기획이 가능했던 시기의 '스파이더맨'과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그 일부로 자리할 수밖에 없는 시기의 '스파이더맨'은 관람 시점만 다른 게 아니라 그 영화가 당대에 차지하는 의미도 기획에 들어가는 고민도 다르게 된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샘 레이미, 마크 웹 시절의 스파이더맨과 MCU 시대의 스파이더맨이 아무리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건 마찬가진데, 결과적으로 이번 작품은 일차적으로 소니의 니즈와 마블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졌고 그것의 실현 방안은 십수 년에 걸친 팬층 전반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물로 느껴진다. 세계관을 상업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멀티버스'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한 발판으로서의 멀티버스라면 기꺼이 환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지.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물론 특정 TV시리즈 캐릭터의 등장과 같이 후속 작품(들)을 위한 노골적 연결점이나 이스터에그처럼 느껴지는 면면이 없지 않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활용과 마블 스튜디오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이걸 예상하긴 어렵지 않았겠다. 그러나 이 대단한 기획자들의 고민과 실행은 차라리 '이 세계 저편 어딘가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근원적인 상상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는 자기 선택을 되돌리고 싶어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사소하지만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을 어떤 사건을 돌아봐야만 했을 테니까. 이 '이야기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일'은 게임이나 소설과 같은 매체로 접할 때보다 그 자체로 시간성에 도전하고 그 자체로 체험에 다가가는 영화 매체일 때 더 강력해진다. 그래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같은 말이나 "애쓰는 중이죠" 같은 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듣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것이 된다.


이 기획이 꽤 성공적이라는 건 개봉 3주차 만에 글로벌 극장 수익 14억 달러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될까. 계속해서 '세계관'과 과거 스파이더맨들의 이야길 했지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고 나면 비로소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모두를 돕는' 히어로로 거듭난 동시에 매 순간 부딪히고 상처를 봉합하고 성장하고 생동하는 캐릭터로 자리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존 왓츠의 '스파이더맨'은 이제 삼부작이 되었지만 비로소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때 그들의 이야기가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상을 극장의 힘을 빌어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 묘하게도 다가올 시간을 맞이할 선물이 된다.


(*참고: 글로벌 누적 극장 수익 -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 8억 8,016만 달러,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11억 3,192만 달러)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국내 메인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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