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트레바리에서 진행했던 모임 중 김혜리 기자의 "예술도, 철학도, 종교도 세계를 직접 개선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 세계를 개선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도록 지지해준다."라는 문장을 인용했었다. 직접 힘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어떤 힘을 파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우연히 만난 한 편의 영화가 그것을 능히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직은 믿고 있다.
작년 혹은 재작년 '이맘때'의 사진이나 글을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 살피다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대목이 있다. '그때도 이렇게 생각했구나' 따위의. 내가 쓰는 글은 그 자체로 힘이 없다. 몇 명이 읽든 그게 누구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것에 관해 생각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그것만으로는 별 달리 해주는 것은 없다. 영화를 만드는 일과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많이 다를 것이므로.
올리비아 랭의 산문집 『이상한 날씨』(어크로스, 2021)의 서문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종종 예술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우리의 도덕 풍경을 조성하고 타인의 삶 내부를 우리 앞에 펼친다. 예술은 가능성을 향한 훈련의 장이다. 그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우리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온통 빛으로 벅차오르길 원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21쪽)
문화예술이 지니는 가치에 대하여 긍정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별개로, 자기 취향을 지키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지키는 일에 대해 생각하느라 새해 첫 달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 나는 글을 왜 쓰고 있지? 무엇을 위해? 블로그에 영화 기록을 처음 시작했던 게 2013년 여름의 일이니까, 햇수로만 따지면 10년 차를 향하고 있다. 올해가 다 지나갈 무렵에는, 조금 더 희망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2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