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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9. 2022

냉소적으로 낙관하는 스토리텔러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2021) 리뷰

세계가 합심해서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내거나 초유의 재난을 막아내는 모습을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하게 목격했던 것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의 일이다. 가령 <인디펜던스 데이>(1996)나 <딥 임팩트>(1998), <투모로우>(2004) 같은 영화들을 생각하면 재난으로 인해 소원했던 가족 관계가 회복되거나, 작중 누군가의 희생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전개가 그때는 마치 공식처럼 여겨졌던 시기다. 영화가 세계 혹은 인류를 낙관하는 일은 즐길 콘텐츠를 찾으러 극장에 온 이들에게 마땅한 보답 같은 것이었다. 그 영화들 속에서 연인은 사랑을 확인하고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며 국제사회는 협력하여 재건을 다짐해왔다.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지금 말할 애덤 맥케이 감독의 영화 <돈 룩 업>(2021)은 완전히 위와 반대편에 선 채 낙관만 하다가는 세계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혹은, 이미 영화 밖 현실이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미시간 주립대의 한 천문학자가 인류 문명 전체를 파괴할 정도의 혜성 충돌을 예고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돈 룩 업>의 도입부는, 실은 감독의 전작인 <빅 쇼트>(2015)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향한 경고를 듣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혜성 충돌이 6개월 남았다고 경고하지만 정치권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 잡기에 골몰하고, 미디어는 천문학자의 외모 등 가십에 사로잡혀 있다. 과학자가 몇 번의 계산을 거쳐 제시한 데이터를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로 믿지 않는다.


애덤 맥케이 감독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처럼 재난의 규모와 파장을 시각 오락화 하는 데 주력하지는 않을 테니 <돈 룩 업>도 당연히 혜성 충돌 자체는 중심 소재가 아니다. 관건은 이 영화의 전개가 세계가 합심해 혜성 충돌을 막을 대안을 물색, 실행하거나 용감한 누군가가 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식의 상업 재난 영화와 거리가 멀다는 것. <돈 룩 업>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당면한 혜성 충돌의 위기보다 팝스타의 연애담에 더 관심이 있으며 혜성은 선거 국면 전환을 위해 이용되는 것을 넘어 거기 매장돼 있을 것으로 주장되는 각종 광물 자원의 경제적 가치가 충돌로 인한 피해보다 우선시되기도 한다.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혜성이 점차 지구와 가까워지자 마침내 육안으로도 보이기 시작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눈앞에 다가온 혜성의 실체를 보라는 “룩 업”과 그것의 존재를 중요시하지 않는 “돈 룩 업”으로 나뉜다. 이제 중요해지는 화두는 혜성 충돌의 위협이 진짜인지가 아니라 혜성 충돌을 어떤 관점에서 정의할 것인가에서 비롯한다. 나아가 <돈 룩 업>은 다수의 언론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일 쏟아지는 정보들을 어떻게 검증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하여 커다란 물음을 던진다.


단지 영화였다면 이야기는 다시 쓰면 되고 잘못된 선택을 돌이켜 보다 나은 결정을 하면 된다. 문제는 이것이 그저 영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문학 교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어디론가 향하는 차 안에서 재즈 보컬 그룹 ‘밀스 브라더스’(The Mills Brothers)의 곡 ‘Till Then’의 가사 일부를 인용한다. “잃는 것도 있어야 얻는 것도 있다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시간뿐이기를.” 하지만 시간을 잃는다는 건 살아갈 기회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집단지성이 옳은 방향으로 작동하고 이 세계가 영속하리라는 믿음은 오늘날과 같은 분열의 시대에 상당 부분 사라진 것인지 모른다.


<돈 룩 업>은 그로 인해 우리가 처할 수 있는 극단적인 위협을 내보인다. 인류의 행복과 번영이 더 이상 공동의 선의와 노력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서늘한 메시지는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 위를 봐야 할지 아래를 봐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에게 <돈 룩 업>은 ‘어디’ 혹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139분 내내 떠든다. 들을 만한, 아니 ‘들어야 할’ 이야기일지도 모르기에 이것은 전혀 시끄럽지 않다. 애덤 맥케이처럼 낙관하지 않는 스토리텔러가, 이 세계의 지속을 낙관하기 위해 필요하다.



영화 '돈 룩 업' 국내 포스터

*LG유플러스 '일상비일상의틈'에 게재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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