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2011), 베넷 밀러
어릴 때부터 촉망 받는 야구 유망주였던 '빌리 빈'(브래드 피트)는 고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거액의 연봉을 제안 받고 스탠포드 전액 장학금 대신 뉴욕 메츠 입단을 택한다. 그러나 스카우터들의 기대와 달리 프로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몇 년 간 저조한 성적으로 여러 차례 팀을 이적한 끝에 결국 선수 생활을 그만둔다. 그것이 지금의 그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의 단장으로 만들었다.
<머니볼>의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는 운전 중 딸 '케이시'(케리스 도시)가 불러서 녹음해 준 Lenka의 'The Show'라는 곡을 듣는다. 기타를 치며 낭랑하게 부르는 곡의 가사는 대략, 언제나 인생은 어렵고 늘 선택의 기로에 서니 어떻게 해야할지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한 편의 쇼처럼 즐겨보자는, 그런 내용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실화에 극성 내지는 일종의 여운을 두기 위한 장치의 하나 정도로만 여겼는데 다시 보면서 돌이키니 '빌리'가 처한 상황과 그가 과거에 겪었던 일과 꽤나 잘 들어맞는 선곡이다. 오랜 경력과 감각을 과신한 스카우터들은 자신의 진로에 제대로 된 확신을 가지고 있을 리 없는 그에게 선택을 종용했고, 그는 자신이 겪은 바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감각이 아니라 통계에 힘을 싣고 야구를 분석하는 '머니볼' 이론에 매료된다. 재능이 있으면 계약은 할 수 있으되, 자신감의 원천은 성적(곧, 승리를 이끄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실화를 망치는 영화들이 적지 않으나 <머니볼>은(그리고 베넷 밀러의 모든 영화들은)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탁월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진다. 야구에 대해 잘 모르면 보기 어려운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 <머니볼>은 야구, 혹은 스포츠의 생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더라도 감상에 거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아론 소킨이 각본을 쓴 영화 답게 주요 장면마다 배우들이 쏟아내는 대사들은 그들을 스포츠인이 아닌 누구나와 같이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며,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재 자체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더욱 그에 대해 흥미를 유발해낸다. 자신의 뜻을 굳이 타인에게 무리하게 설득하려 들지 않고 확고하게 추진해나갈 수 있는 신념, 관성에 젖어들지 않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판단력, 혹은 리더십에 대해 자연스레 관객에게 던지되 이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부드러우면서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꼭 주인공의 그것과 닮았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이며, 그런 이들이 모여 사는 인간 세상은 자연히 온갖 불합리와 불평등 같은 것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머니볼>은 그런 가운데서도, 그럼에도 사랑하고 믿어볼 수밖에 없는 것들을 통쾌하게 불러내 의미를 불어넣는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믿고 그를 아낄 수 있는 마음과, 뜻하는 바를 이루어 무엇인가 끝내 변화를 이루려는 의지. 바로 그 뜻이 의미가 되어, 하루 앞도 제대로 가늠하기 힘든 이 먹구름 가득 낀 세상에서 진정 빛을 가져다주는 순간들.
그래서 '빌리'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아마도 이게 아닐까. "How can you not be romantic about baseball?"(그는 매번 결정적인 순간, 영화 전체를 통틀어 이 말을 세 번 정도 한다.) '로맨틱'한 세상은 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확고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찾아내면 거기서 한 번쯤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가 저마다의 승리자라는 마음으로. (★ 9/10점.)
<머니볼(Moneyball, 2011)>, 베넷 밀러
2011년 11월 17일 (국내) 개봉, 133분, 12세 관람가.
출연: 브래드 피트, 조나 힐,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크리스 프랫, 스테판 비숍, 로빈 라이트, 케리스 도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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