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고'(2011) 리뷰
뤼미에르 형제가 카페에서 '상영'한 불과 1분 분량의 <열차의 도착>(1895)을 보고 사람들은 기차가 정말로 자신들을 덮쳐올까 혼비백산했다. 영화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낯선 볼거리로 등장했으며, 훗날 제작자들은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거라 여겼다. 10분이 넘는 상영시간만으로 혁명적이었던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는 오늘날 Sci-Fi라 불리는 장르의 기원과, 여러가지 편집 기법들의 원형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산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기 위해 산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며 행복해 한다. 누군가는 어릴 적 아빠의 손을 잡고 보러 간 영화에서 평생의 꿈을 만난다. 누군가는 영화를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마술사이자 연극배우였던 조르주 멜리에스와 고전영화에 대한 헌사인 <휴고>(2011)는 최신 기술로 탄생한 21세기의 고전이다. <휴고>의 3D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숨쉰다. 시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고 이야기와의 거리감을 좁힌다. 그 마음으로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영화가 가진 그 힘을 가장 낭만적이고 따뜻하게 그린다. 그 시절 영화는 곧 마술이었고, 동시에 꿈이었다.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해결해야 할 물음이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멜리에스를 위한 영화를 만든 것처럼, 수십 년 후 미래의 누군가가 오늘의 마틴 스콜세지에게 헌정하는 영화를 선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를 사랑한 까닭인 동시에, 영화가 이 세상을 이야기로서 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이 세상에 영화가 필요하다는 수식이다. 영화를 향한 애정이 말하지 않아도 뚝뚝 느껴지는, 가장 순수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말할 때는, 애써 귀를 쫑긋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잘 들리고 보일 테니까.
스콜세지의 영화는 유난히 역사와 시대를 중요한 소재로 다루는 작품이 많다. '새 영화'를 본다는 것의 고유한 설렘과 떨림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 <휴고>가 가치 있는 이유는 단지 이 작품이 향수에만 젖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휴고>는 현재와 현재의 영화, 현재의 관객을 모두 과거 영화의 예술로서의 태동기에만 가능할 수 있었던 경험으로 이끌어준다. 초기 영화의 매력은 대부분 스토리 자체보다는 외적 스펙터클과 시각적인 충격에서 나왔다. 무성 영화를 지금 봐도 이해에 지장이 없는 이유다. 이미 100년 전에 오늘날 최신 컴퓨터 기술의 힘을 빌려서만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을 카메라만으로 만든, 시대를 앞선 아티스트. '조르주 멜리에스'(벤 킹슬리)가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며 스스로의 작업물을 '작품'이라 칭하는 것조차 허하지 않았을 때, 그제야 <휴고>를 보는 관객들은 그의 '작품'들에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를 3차원을 넘어 간접 체험하게 된다.
자동인형의 비밀에 대해 <휴고>는 일부러 명확하게 해소하지 않는다. 단서들만 줄 뿐 이를 영화적 장치로써 남겨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영화라는 모험이 일단 빠져들면 마음이 먼저 동하는 것임을 일깨우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초기 영화와 조르주 멜리에스에 바치는 헌사는 영화가 아닌 관객의 눈과 마음(그리고 '휴고'(아사 버터필드)의 시선)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진짜가 아님을 인지하고도 깊은 몰입감을 느끼며 빠져드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처럼, 그 정확한 작동 원리를 알지 못해도 사용하고 향유할 수 있는 숱한 첨단 장비들처럼 자동인형의 역할은 영화 속 세계에 빠져드는 데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해피엔딩이 영화에만 있지는 않다는 믿음과, 예술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의 경이를 잊지 않는다면 시대와 환경이 바뀌고 매체가 변화해도 그것은 문화로서 영구히 남을 수 있다는 순수한 신념을, <휴고>는 소년의 시점으로 말한다. 그 신념이 어떻게 탄생되고 만들어져 왔는지를 그저 그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함으로써 표현한다.
마지막 신이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자신의 혼을 담아 만든 그 영화라는 자동인형으로 당신은 어떤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자신의 꿈을 복원해낼 수 있었던 그의 삶처럼, 그 질문을 통해 감히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낭만까지도 되살리려(Animate)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마침내 성공한다. (2017.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