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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23. 2022

리메이크에 관하여

이야기된 이야기의 재구성

영화 <컨택트>(2016)에 나오는 외계 종족 ‘헵타포드’의 언어로 쓰인 소설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한 적이 있다.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하고 언어에도 ‘어순’이 없는 그들의 문자 특성상 어쩌면 내러티브라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끝을 아는 것이고 책장을 넘길 순서도 없이 한 번의 획에 모든 걸 나타내므로 만약 헵타포드어로 만들어진 소설이 있다고 해도 그건 책의 형태가 아니라 아주 크고 넓은 하나의 원형이 아닐까.


영화 '컨택트' 스틸컷

소위 ‘요즘 애들은…’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지금만이 아니라 기원전 수천 년대의 기록에서부터 이미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그때부터 벌써 ‘나 때는 말이야’ 하고 말할 그 ‘나 때’가 저마다 세대마다 달랐다는 뜻도 되겠지만 지금 하는 이야기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가 해왔고 또 해온 이야기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창작의 가치를 무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결국 이야기의 소재나 내용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방식, 그것이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자기 작품의 고유함을 만들 것이고 온전히 자신처럼 똑같이 말하고 쓰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란 오직 본인뿐이므로, 내 진심과 깊은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본연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는 뜻이다. 단 한 번도 꺼내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는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음악을 생각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계라는 게 있나. 같은 음역이라 해도 일단 목소리가 다르며 그 목소리를 활용해 음들을 활용하고 조율하는 방식이 다를 테니 그게 각자의 작품을 구분 지을 테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가령 ‘영웅이 위기 속에서 세상이나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라고 해보자면 얼마나 수없이 존재해왔나. 21세기의 수퍼히어로 영화만이 아니라 이미 고대의 신화에서부터 그런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영화의 서사를 분석하거나 비평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소설을 중심으로 한 문학의 그것으로부터 나왔고, 그것의 기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같은 고전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할리우드 주류 트렌드 중 하나인 ‘리메이크’가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라고만 생각지 않는다. 실패한 경우도 있지만 흥행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경우들도 많은데, 당장 몇 개만 나열해봐도 ‘벤허’나 ‘황야의 7인’, ‘타잔’, ‘정글북’, ‘혹성탈출’, ‘배트맨’, ‘수퍼맨’ 등을 비롯해 더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저 영화들 중 가장 앞서 만들어진 영화조차 이미 기존에 있던 소설이나 동화 등을 각색한 경우가 다수다. 이미 있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그것의 인기 등에 편승해 작품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그 자체가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작’ 팬들의 혹평을 면치 못할 여지도 다분하다.


시상식에서도 시나리오에 관한 상은 ‘Original Screenplay’(각본)과 ‘Adapted Screenplay’(각색)로 구분된다. 여기서 물론 주목할 것은 ‘Adapted’다. 단지 한 영화에서 다른 영화로, 소설에서 영화로, 옮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에 특정한 방식으로 적용한다는 의미다. (‘make (something) suitable for a new use or purpose; modify’ – Oxford Eng. Dictionary) 리메이크란 같은 것을 똑같이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영화 '스타 이즈 본' 스틸컷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 여섯 번씩 리메이크 된 경우라면 어떨까. 전자는 <스타 이즈 본>(2018)이고 후자는 <작은 아씨들>(2019)이다. 두 영화에 대해 이미 쓴 적 있으므로 결론을 당겨 말하면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와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나는 기꺼이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작품이라 부르겠다. 물론 2018년작 <스타 이즈 본>은 1954년, 1976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1937년작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 예컨대 꿈이 있지만 펼치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과, 이미 유명한 스타이지만 약물이나 음주 문제 등으로 조금씩 커리어의 내리막을 걷는 남자 주인공.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 한 사람의 성공과 한 사람의 몰락.


1937년작의 두 주인공 캐릭터가 배우라면 2018년작의 두 사람은 가수라는 점을 비롯해 이 비슷한 이야기들에는 저마다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를 비롯해 1937년, 1954년, 1976년, 2018년 네 편의 영화 각각의 감독과 작가가 ‘스타’를 그리는 방식이 곧 네 편을 모두 고유한 것들로 만든다. 이 점에 대해 2018년작의 인물들은 적극적이면서 꽤 직접적으로 말한다.


<작은 아씨들>은 어떤가. 1800년대 중반에 나온 소설 속 이야기는 네 자매 중 글을 쓴 둘째 ‘조’를 화자로 당대 여성의 시선에서 일상을 조명하고 관찰한다.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된 이 작품의 중심에는 ‘여자가 쓴 글은 안 팔린다’는 인식이 깔려 있던 시기에 ‘자기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가족의 소박한 일상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의 이야기가 있다. 물론 최근작에서도 감독 그레타 거윅만의 재해석이 담겼지만 이 경우라면 조금 전 말한 내용 자체만으로 150년을 뛰어넘어 후대 사람들에게 거듭 들려줄 가치는 충분하겠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도 그래서다.


자,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내가 ‘이미 지나간 영화’를 거듭 다시 찾아보는 이유에 해당되기도 한다. 그것보다 실은 어쩌면, 단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래서 <스타 이즈 본>(2018)에서 ‘잭슨’도 ‘앨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I just wanted to take another look at you. 이 말을 ‘잭슨’은 물론 두 번 한다. ‘Another look’은 이전의 것과 다음의 것이 같은 게 아님을 이미 내포하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이 말은, 네 편의 ‘스타탄생’ 영화에서 모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대체 몇 번이나 보았을까. 앞으로는 또 몇 번을 볼까. (2020.04.22.)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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