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un 24. 2022

톰 크루즈는 얼마나 많은 죽음들을 견뎌냈나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리뷰

영화 한 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도입부였나. 첫 장면이었나. 어떤 이름 모를 고대인이 자연재난으로부터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전후 맥락도 없이 도무지 이것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장르가 SF였는지 아니었는지, 감독이 누구였는지, 무슨 내용인지. 아니, 첫 장면이 아니었나. 영화 평점 애플리케이션에서 내가 평점 남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를 훑었고 포털 사이트에서 수십 가지의 검색 조합들을 넣어보았지만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이걸 찾고자 한 건 더그 라이먼의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를 다시 보면서 이전까지는 잘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후에 꺼내기로 하고 일단 영화 전반에 대한 소개부터. 외계 종족 ‘미믹’의 침략으로 전 세계 여러 지역들이 초토화 된 시대. 인류는 패배를 거듭하다가 ‘엑소 슈트’라 불리는 전투 장비를 개발하고 연합군을 구축하면서 베르됭 지역에서 첫 승리를 거둔다.


공보 장교인 ‘케이지’(톰 크루즈)는 상륙 작전 현장에 취재를 다녀오라는 연합군 사령관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병으로 강등되고 그 상륙 작전 현장에 파병까지 된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내던져진 그곳에서, ‘케이지’는 미믹 종족의 어떤 능력으로 인해 죽고 나면 그 전날 아침으로 돌아가 깨어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수십, 아니 수백 번의 반복된 죽음을 거치며 ‘케이지’는 베르됭 전투 승리의 주역인 ‘리타’(에밀리 블런트)를 만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얽힌 비밀에 가까워져 간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틸컷


종이에 손 베는 것조차 싫어했던 ‘케이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슈트의 무기로 미믹 족을 제압하게 되기까지. 이미 수없이 많은 리셋을 경험한 ‘케이지’는 ‘리타’에게 전투 훈련을 받으면서 또 그만큼의 리셋을 겪는다. (‘케이지’가 훈련 중 부상을 당하면 ‘리타’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를 죽이면서 ‘다시 여길 찾아오라’고 말한다)


‘리타’와 시간을 보내면서 ‘케이지’가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만이 아니다. 미믹 족의 지도자 ‘오메가’가 있는 곳에 이르기까지 ‘케이지’와 ‘리타’는 모든 동선과 선택지를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씩 계산해나가는데, ‘케이지’는 실수하거나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리타’가 자신보다 먼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한다.


주인공인 ‘케이지’의 시점으로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죽더라도 다시 그 전날로 돌아가 깨어나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어떨까. ‘케이지’가 만약 천 번을 죽었다면, 거기 천 개의 세계들이 ‘남겨진 채’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 명의 ‘리타’가 있을 것이다. 어떤 ‘리타’들은 살아 있고 어떤 ‘리타’들은 ‘케이지’보다 먼저 죽은 채로. 왜 ‘리타’에게는 그런 삶과 죽음들이 남겨져야 하나.


이건 단지 관객의 한 사람인 내 생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케이지’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특정 시점에 이르자 ‘케이지’는 ‘리타’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매번 죽는 지점이 거기라고 판단하고, 한동안 독자 행동에 나선다. 즉, 죽고 리셋을 해도 ‘리타’를 찾아가지 않고 혼자서 오메가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물론 작전상 오메가가 있는 곳에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리타’가 죽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면서 ‘케이지’의 내면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틸컷


오메가만 찾아 죽이면 되었지 자신이 죽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리타’에게 ‘케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몰랐으면 좋았겠지만, 이젠 알잖아.”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상황이 되자 ‘리타’는 ‘케이지’에게 반대로 말한다. “당신을 더 알지 못한 게 아쉬워.” 그 앞의 말은 “고마워,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줘서.”다. 상대가 커피에 각설탕을 몇 개나 넣는지를 알고 조금 후에 상대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를 아는 일. 얼마만큼의 죽음을 거쳐왔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은 그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제목이 함축하는 뜻처럼 마침내 내일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오락실에서 새 동전을 넣고 리셋 하는 게 오락실이어서 가능하듯이 어떤 작용에 의해 죽고 나서 다시 깨어나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결국은 불사의 힘 같은 게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어떤 숙명의 일부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그래서 훌륭한 상업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서도 가볍게만 보기는 어려운 영화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죽음들을 견뎌냈기에, 견디기 싫어도 봐야만 했을 그 상황들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기에, 그러한 표정과 말이 나올까. 영화가 끝난 뒤 크레딧 부분부터 흘러나오는 존 뉴먼의 ‘Love Me Again’을 한 곡 반복으로 계속 들으며 이 글을 썼다. 이제 맨 앞에서 말한 ‘그 장면’이 있는 영화를 찾아야겠다. 찾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영화가 정말 있었나. 검색창의 엔터를 수없이 고쳐 누르며 생각한다. (2020.03.11.)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국내 메인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