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 매버릭'(2020) 리뷰
영화의 역사는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기술적으로든 혹은 어떤 환경적 요인으로든 지나간 역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다른 플랫폼 혹은 콘텐츠에 비해 '영화'의 역사는 짧다.) 그렇지만 지나 보내야(Let Go) 하는 과거도 있는 한편 계속해서 현재인 것으로 만들어야 가치 있어지는 과거도 있다. 스스로 어떻게 지난날의 아픔을 지나 보내야 할지 몰랐던 매버릭은 과거의 윙맨에게 찾아가 도움 내지는 의견을 청하는데 그(아이스)가 하는 말은 오직 (그것을)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이 루스터에게 하는 말이자 그로부터 어떤 순간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는 말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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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고 이성적인 계산과 판단의 영역이 있는가 하면 오직 믿음과 의지로 해내야만 하는 영역이 있다. 과연 파일럿이 없는 전투기가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Mach 10'이나 '10 G' 같은 숫자는 단지 '데이터'로 존재할 때에는 사전에 설정된 기준점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파일럿의) '목표'가 되는 순간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 삶 자체가 된다. (매버릭은 실제로 이것이 직업이나 기술을 넘어 자신의 삶 자체인데 누군가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탑건: 매버릭>(2020)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 혹은 피트 미첼은 그 자체로 톰 크루즈의 영화 여정과 뗄 수 없이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유일무이한 캐릭터다. 그가 이것을 '가능해야만 하는 미션'으로 만들고 밀어붙이는 순간, 그것은 정말 가능한 것이 된다. 이 '가능성'을 가르치는 일은 수많은 실전을 딛고 몸소 증명해야만 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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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 in movies since 1981." 톰 크루즈의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달린다'는 뜻 외에 영화를 '만든다'는 의미와 그 영화를 '상영한다'는 의미도 담는다. 액팅을 하든 프로듀싱을 하든 그는 언제나 영화의 세계 안팎으로 달린다. 데뷔 이래 계속해서 그래 왔고,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비롯해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와 같은 빼어난 영화들을 21세기에 들어서도 선보였다. 그의 연기력이나 영화인으로서의 진가가 언제나 외모 혹은 스타성에 가려져 왔다고 확신하는 편이다. 특별히 <탑건: 매버릭>만이 걸작인 게 아니라 그는 40년 동안 그런 영화들을 꾸준히 관객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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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유한하고 그것은 영화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결국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나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준 채 액자 속 사진과 훈장들을 남길 뿐이다. 동시대를 이끄는 모든 영화인들이 결국은 관객 자신이 그렇듯 나이를 먹고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삶이 대체될 수 없고 서사가 요약될 수 없듯이, 한 사람의 발걸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또 누군가를 행동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것이 된다. <탑건: 매버릭>은 마치 <탑건>(1986)으로부터 36년의 세월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전편을 아득히 뛰어넘는 걸작이 되어 스스로가 '반드시 만들어졌어야만 하는 속편'임을 130분 동안의 매 프레임마다 증명한다. 영화가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달리는 이의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무엇을 창조해내는지 생생히 체험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스턴트 연기를 직접하고 전투기 조종 따위를 배우가 대역 없이 직접 행했기 때문에? 아니, '물리적으로 실제인 것'만으론 부족하다. 직업을 수단을 넘어 삶 그 자체인 것으로 만드는 진실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끈기와 투지를 통해서만 그것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어떤 품위가 있다. 스크린으로 만나는 이 경험이 언젠가 옅어지거나 낡아 사라지게 되더라도,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 10/10점.)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2020), 조셉 코신스키 감독
2022년 6월 22일 (국내) 개봉, 130분, 12세 관람가.
출연: 톰 크루즈, 마일즈 텔러, 글렌 포웰, 제이 엘리스, 그렉 타잔 데이비스, 모니카 바바로, 대니 라미레즈, 루이스 풀먼, 제니퍼 코넬리, 존 햄, 에드 해리스, 발 킬머 등.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많은 성취들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적을 상정하지 않은 것이다. 적대적으로 바라볼 대상이 있을 경우 관객이 좀 더 주인공(들)에 이입하기 쉬워진다는 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탑건: 매버릭>은 팀 내의 감정과 개인적인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여기에는 우정이나 헌신, 임무를 향한 의지 같은 것이 있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변함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라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언급은 그래서 완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국제 정치 및 군사적 함의가 깃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