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2022) 리뷰
“우리랑 이제, 행복해지자꾸나.”
베이비박스 안에 담긴 아기를 꺼내 데려온 다음날. 목사의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아기를 보며 위와 같이 말한다. 여기에는 버려진 아기의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 내지는 아기의 앞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담긴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밤 아기를 안고 온 어린 여성은 꼭 찾으러 오겠다는 메모를 남긴 채 아기를 교회 앞 바닥에 놓고 떠난다. 차 안에서 지켜보던 형사는 아기의 체온저하를 염려해 아기를 베이비박스로 옮겨놓는다. 아기를 데려온 중년의 남자는 또 다른 젊은 남자와 함께 아기를 교회 대신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낼 궁리를 한다. 여성의 이름과 연락처 같은 것이 없었지만 찾으러 돌아오겠다는 쪽지가 있는 아이는 교회에서 입양을 보내지 않고 거두어 키운다. 낡은 봉고차에 아이를 태워 이동하는 두 남자를 따라가는 두 형사. 날이 밝자 봉고차가 세워진 세탁소 앞에서 잠복을 하는 두 형사의 뒷모습 투샷과 함께, 영화의 타이틀 로고가 등장한다. ‘브로커’.
<브로커>(2022)를 복기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와 <어느 가족>(2018) 등과 같이 가족의 의미와 경계에 관한 다면적인 물음을 던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베이비박스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또 한 번 가족을 화두로 삼은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한국의 출연진과 제작진을 주축으로 각본과 연출과 편집을 맡은 영화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빌어 조금 더 오래 생각해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내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타국에서 찍은 영화라는 점으로 인한 언어 등의 이질감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중심인물 중 하나인 ‘상현’을 연기한 송강호 배우가 현장에서 대사의 톤과 같은 것에 대한 일종의 자문역을 직접 맡았다는 이야기 덕분이 아니라, 부러 구어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뜻하는 바가 느껴지는 시나리오 덕분이었다. ‘소영’(이지은)과 같은 일부 캐릭터에 대해서는 일부러 직접적으로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쪽으로 짜여 있지만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에서 직접 전해지는 것처럼 <브로커>의 이야기는 지극히 쉽고도 익숙해서 그에 대해 특별히 해석할 여지가 적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줄곧 ‘아기 수출’에 있어 세계 최상위권에 있었다. 미국 등 해외로 입양 보내지는 아기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상황이든 혹은 미혼모(그리고 성폭력)에 관한 문제이든 여러 원인이 개입되겠지만 <브로커>는 이 문제를 사회 문제로서 적극 다루기보다는 영화를 구성하는 환경적 요소의 하나로 취급하는 듯 보인다. (가령, ‘미혼부’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에 관해서도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것만큼이나 낳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데, <브로커>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질문을 남긴다.
다만 낙태 혹은 인신매매 등 행동의 죄목을 그 경중을 묻거나 인물의 도덕성을 논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브로커>는 벌어진 일과 앞으로 펼쳐질 수 있을 미래의 가운데에서 인물 한 명 한 명이 어떤 선택을 하고 거기까지 얼마만큼의 고민과 아픔 같은 것들이 있어왔을지를 천천히 헤아리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것은 많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들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브로커>에는 "우성을 버린 건 (...) 때문이었잖아"라고 헤아려주는 시선과 "그래도 버린 건 버린 거야"라고 자각하는 태도가 공존한다. 다시 말해서, <브로커>는 "낳고 나서 버리는 일"과 "낳기 전에 죽이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나쁘거나 덜 나쁜지 묻는 영화도 베이비박스라는 소재에 대해 적극적인 주장 혹은 태도를 전하기 위한 영화도 아니다. 그저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지켜낸 아이야"라고 한 아이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혹은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모두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쓰인 영화로 느껴진다. (앞에서 언급한 장면에서는 이 대사가 그 공간 안의 모든 인물을 하나씩 지시하며 발화된다) 그것 또한 많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들이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필모그래피 중 <브로커>와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읽히는 <어느 가족>과 같은 작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균질하게 다가왔다고는 할 수 있겠다. 가령 입양을 보낼 부모를 찾아 (일종의 면접처럼) 다니는 과정들은 한편으로 단조롭게 여겨지는 면이 있고 형사물과 로드무비가 합쳐진 듯한 중반 이후를 지나면 여러 인물들과 관계성을 아우르는 균형 감각은 감독의 다른 영화들보다 평이하게 보인다. 그런 데도 영화가 끝날 무렵,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낡은 승합차 안에서도 여전히 액자 속에 간직된 사진 한 장이 몇 년의 시간 흐름 속에서도 남아 이들이 어떤 형태의 가족임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정답을 지시하지 않지만 어쩌면 누구도 ‘브로커’가 아니라 가족이 되고자 했던 이들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뜻에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인터뷰에서의 말처럼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서사를 통해 그 시절을 다시금 부여해주기 위해서.
https://brunch.co.kr/@cosmos-j/319
<브로커>(Broker, 202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22년 6월 8일 개봉,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임승수, 송새벽, 류경수, 강길우, 김새벽, 이동휘, 김선영, 박해준, 이무생 등.
제작: 영화사 집
배급: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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