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2022)는 <토르: 라그나로크>(2017) 이후 배우 겸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가 이어서 맡은 네 번째 '토르' 시리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즈 4 작품들이 한창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어벤져스'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인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이야기를 한 번쯤 리마인드 할 때도 되었다. 개봉 전부터 이 영화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과 기대가 높았던 것은, 전편에서는 연출과 '코르그' 역 출연만 맡았던 타이카 와이티티가 이번에는 공동 각본으로도 참여하며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한층 더 주도적으로 맡았다는 점, 그리고 <토르: 천둥의 신>(2010)과 <토르: 다크 월드>(2013)에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로 만날 수 있었던 '제인 포스터'의 재등장 등 여러 요소들 덕분이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스틸컷
*본 글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내용과 평가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전작 '라그나로크'에 이어 궤도에 오른 '타이카 와이티티 표' <토르> 이야기
여러 신화들과 셰익스피어 비극에 정통한 케네스 브래너의 손길로 탄생한 <토르: 천둥의 신>을 시작으로 <토르: 다크 월드>까지의 '토르'는 태생적으로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등 다른 1세대 '어벤져스' 캐릭터들과 달리 '오딘슨'으로서 지니는 무게감이 있었다. 반면 타이카 와이티티의 손길을 거쳐 <토르> 이야기는 전작의 'Immigrant Song'(Led Zeppelin)이나 이번 영화의 'Sweet Child O' Mine'(Guns N' Roses) 선곡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층 유쾌하고 밝은 톤을 장착했다. ('토르'의 로큰롤 스타일의 머리 모양과 의상도 마찬가지의 흐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구 아스가르드는 파괴되어 노르웨이의 작은 도시 퇸스베르그가 '뉴 아스가르드'가 되었다. 이제 '로키'도 '오딘'도 '헤임달'도 '토르'의 곁에 없다. (이 영화 이전까지는 '제인'도 없었다) 이제 '아스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불릴 만큼 '토르'의 곁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들이 함께이고 '뚱뚱한 토르' 시절을 지나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 혹은 과거를 딛고 선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해졌다. <토르: 라그나로크>를 관람했을 당시에는 이렇게 상반된 톤 앤 매너가 낯설게 혹은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마치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엔터테인먼트로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에 충실한 작품이다. 잠시 마블 세계관 내 다른 작품들과의 연계는 (당연히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내려놓기로 결심한 것처럼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기한 '코르그'의 '입'을 빌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엔터테이닝 블록버스터'의 역할을 열심히 해낸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스틸컷
토르의 타고난 정체성과 살아갈 가치관을 모두 대변하는 '사랑과 번개'
영화 내내 곳곳에 크고 작은 유머 포인트들이 산재해 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을 비롯해 '코르그' 등 일행은 꾸준히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반면,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토르'의 반대편 축에서 위압감 내지는 긴장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고르'의 행동 배경에도 결국에는 사랑이 있었다. 소중한 존재를 위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 그가 영화에서 강력한 힘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도 그만큼 사랑이 컸기 때문이라는 걸 영화를 보고 나면 수긍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토르'의 서사와도 무관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제인 포스터'가 어떤 계기로 '마이티 토르'로 재등장하는지 그 배경에서 다뤄지는 서사는 필연적으로 과거 '토르'와 '제인'의 사랑을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소위 '타노스 사태'를 지나 이제는 새로운 동료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 '토르'이지만 그에게는 "8년 7개월 6일"이라고 '제인'과의 헤어짐을 정확히 가늠할 만큼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고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천둥의 신'으로서 '토르'의 태생적인 정체성뿐 아니라 많은 수퍼히어로 영화들에서 중요한 테마가 되는 '사랑'을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사에 결합시킨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스틸컷
한편 '번개'는 '토르'의 새로운 무기 혹은 히어로 활동의 전환점으로서 다뤄진다. <글래디에이터>부터 시작해서 <레미제라블><노아> 등에서 묵직한 연기로 신뢰를 얻어온 배우 러셀 크로우가 이 영화에서는 신(God) 하면 대명사처럼 떠오르는 '제우스'를 연기한다. 거의 반쯤 개그 캐릭터처럼 등장하지만, '제우스'와의 일련의 시퀀스는 히어로이기 이전에 '신'인 '토르 오딘슨'의 전사(前史)와 겹쳐지며 태생적으로 지구 출신이 아닌 '토르'의 정체성에 대한 일말의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제우스'가 통치하는 세계인 옴니포턴스 시티의 웅장하고도 압도적인 비주얼이 IMAX 등 특별관 스크린에 걸맞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안 '토르'의 내면에서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신이라는 숙명을 내려놓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토르'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신 중의 신'인 '제우스'의 등장은 외모적으로는 '뚱뚱한 토르'의 과거를 떠올리게도 만들고 어쩌면 인간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그의 숙명을 끌어안는 역할을 간접적으로 하는 것처럼 비친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스틸컷
"마음 둘 곳이 없을 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봐."
초반부 어느 행성에서의 전투를 마친 뒤, '코르그'와 함께 또 다른 여정을 떠나려는 '토르'에게 '스타로드'(크리스 프랫)가 위와 같은 말을 해준다.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라는 말은 당신이 인간이든 신이든 삶이 무엇으로 살아지는지 들여다보라는 뜻일 것이다. 처음 '제인 포스터'가 <토르: 러브 앤 썬더>에 다시 등장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진작에 필요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이던 2019년, 디즈니의 'D23' 엑스포에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인터뷰 중 '제인 포스터'의 등장에 대해 '단지 히어로의 연인' 정도에 그치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언급을 한 적 있다. (그는 'The Hero's love interest'라는 표현을 썼다) 원작 코믹스에서의 '제인 포스터'는 초기부터 등장했고 꽤 중요한 비중을 지닌 인물인데 영화에서는 단지 '토르의 여자친구' 정도에 머물렀던 감이 있다. 당시부터 캐릭터의 비중과 활용 면에서 전작들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상술한 것처럼 공동 각본으로도 참여한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그것을 능히 증명해낸 속편이다.
그건 '토르'에게도 마찬가지다. <토르: 라그나로크>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정도만 있었다면 '토르'는 1세대 어벤져스 멤버지만 올드 팬들의 추억 속에 머무르면서 개그 캐릭터로 소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르: 러브 앤 썬더> 그리고 그 이후의 '토르'는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 바이킹'으로서 전에 없던 새로운 여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MCU 영화와 TV 시리즈들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가 다수 선보이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여름 성수기에 어울리는 할리우드 대작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MCU 프랜차이즈들이 작가적 개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이름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스틸컷
<토르: 러브 앤 썬더>(Thor: Love and Thunder, 2022),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2022년 7월 6일 (국내) 개봉, 119분,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찬 베일, 테사 톰슨, 타이카 와이티티, 러셀 크로우, 나탈리 포트만, 타이카 와이티티, 크리스 프랫, 데이브 바티스타, 카렌 길렌, 폼 클레멘티에프, 빈 디젤, 브래들리 쿠퍼 등.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본 글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내용과 평가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