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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18. 2022

온전히 설명할 길 없지만 만조까지 꽉 차버린 마음 안고

영화 '헤어질 결심'(2022) 후기

6월 29일과 7월 16일,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을 각각 관람하고 쓴 후기를 연이어 옮겨둔다.


#1. 씻겨 내려가지 않는 미완의 세계


의심하고 엇갈리고 상처받더라도, 무너지고 깨어져도, 결국에 영영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더라도, 넘어지고 일어나 다시 외치게 될 수밖에 없을 사랑이었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이 <헤어질 결심>(2022)이 처음이라는 걸 상기했다. (국내에) 같은 시기 개봉한 <탑 건: 매버릭>(2020)과 함께,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것이 영화라고, 낯설고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세계에 무방비하고 확실하게 빠져드는 것이 영화의 경험이라고 앞다투어 말해주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무슨 영화를 보든 그것도 (형사적 관객이라 명명한다면) 언제나 매듭이 완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남는다. 하지만 사람을, 세계를 사랑하는 온 마음으로 거기 뛰어들면 그건 오직 서로에게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유일하고 내밀한 역사가 된다고 <헤어질 결심>이 말해주고 편집하여 다시 보여주고 번역하여 다시 들려주고 있었다고 느낀다. 수많은 간조와 만조들을 지나 셀 수 없는 토양과 바다가 거기 섞여버리더라도.


그래서. 나(그리고 우리)는 자꾸만 죽은 이의 시점 쇼트가 되듯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려 하고 타인에게 이해될 수 없는 방식의 그 사랑을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그 자리에 남아 지속한다. 그렇게 세워진 미완의 세계는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어떤 이가 말했듯 사랑에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2022.06.29.)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2. 안약을 연거푸 넣어도 또렷해지지 않는 세계


(휴대전화 대신 정말로) 자신을 만조에 내던지는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잠긴 자리에서 갈 곳 잃은 표정으로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 은근슬쩍 웃음을 주려다가도 한없이 마음을 흔들어놓고는 태연하게 뿌연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영화. 인물들의 심리나 의중을 직접적, 직설적으로 지시하거나 설명하지 않아서 <헤어질 결심>은 더 많은 언어를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원래 영화는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스크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는 듯이, 그리고 이게 '박찬욱 영화'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촬영과 편집, 의상 등과 같은 면에서 쉴 틈 없이 꽉 찬 볼거리를 준다.

물론 <헤어질 결심>에는 볼거리만이 아니라 '들을' 거리도 많다.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같은 숱한 발화들은 문어적이거나 낯설어서 그 자체로 더 집중해서 경청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는데, 배우의 공로도 있겠지만 이 '외국 배우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영화에서 거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서래가 중국어를 쓰는 중요한 순간은 스마트폰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중립적이고도 건조한 음성으로 발화 내용이 전달되는데, 그것들은 어떤 순간에 남성의 목소리 대신 여성의 목소리로 바뀌는 등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통역 앱은 단지 소품에 그치지 않고, 자주 오역되거나 잘못 전달되는 사랑의 언어를 닮는다.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해준은 오해할 뻔했지만 서래의 마음을 사랑이 아닌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해준도 마찬가지였겠지. 해준이 말해왔던 '품위' 같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도저히 지켜질 도리가 없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게 하는 게 사랑이라고 여기면서도, 형사라는 해준의 직업을 생각하면서 그가 어떻게 이 격랑을 겪어내는지 되돌아본다.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플래시 라이트를 켜고 주변을 둘러봐도 어떤 것은 되찾을 수 없다. <헤어질 결심>을 거듭 보고 난 뒤의 마음도 비슷하다. 제대로 온전히 설명할 길 없고 가득한 느낌만을 안은 채 몇 안 되는 꿈같았던 순간을 되새길 뿐이다. (2022.07.16.)


영화 '헤어질 결심' 메인 포스터


https://brunch.co.kr/@cosmos-j/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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