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게임을몇년동안해본사람이라면알것이다. 그건단지실체없는공상이아니라는것을. 거기에는노력과정성만이아니라시간자체가담겨있다. 그시간은무엇인가를쟁취하거나들인노력에대한보상을받기위한시간이아니라그자체로재미와즐거움을만끽하는순간들로채워져있다. 2005년여름출시된 ‘던전앤파이터’라는게임을오랫동안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될무렵부터시작했고대학생활후반여러대외활동을시작하면서 ‘접었’으니까햇수로 7년이넘는다. 내게있어가히 ‘세월’이라칭해볼만한일들. 그순간들을아직도가끔생각한다. 게임내배경음악과같은일부의것들은아직도생생히기억한다. 컴퓨터게임이라고다같은건아니다. ‘온라인게임’으로넘어오면과거의 PC 패키지게임과는사정이조금달라진다. 게임에접속한다른사용자들과함께한다는점에서온라인게임들은여러사용자들간의교류가있어야제대로유지된다. 게임내에서각종거래나친목활동등이이루어지므로온라인게임은 사실상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1999년 출시된 넥슨 게임 일랜시아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운영진이 없어 각종 매크로와 핵이 난무하지만 아직 꽤 많은 유저들이 게임에 남겨져있다. 그들은 왜 일랜시아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내언니전지현과 나> 시놉시스 중에서, 제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는 국내에서 1세대 온라인게임 중 하나로 꼽히는 ‘일랜시아’(1999)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 감독의 기획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니, 감독 역시 ‘일랜시아’를 16년째 플레이 해왔으므로, 정확히는 게임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으로부터 이 작품은 출발한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 얼마 남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등장하는 유저들은 저마다의 답을 한다. “그러게요…”, “최근에 나오는 게임들보다 눈이 덜 아파서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노트북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일랜시아 뿐이에요.”
필연적으로온라인게임은유한성을끌어안고가는콘텐츠처럼다가오기도한다. 인기가시들해지고찾는사람이없어지면, 더이상게임을유지할수없으므로서비스를종료하게된다. 유저들을오래게임에남게하기위해개발사측은지속적인업데이트를통해새로운콘텐츠를추가하고, 버그를수정하며유저들의목소리를반영해패치를한다. 그러나 10년동안방치된게임이라면. 서버가닫히지않고유지되고있는것만으로기적이라고해야할지모르겠지만, 사실상전혀관리되지않고있는게임에계속해서접속한다는건과연무엇을뜻할까. <내언니전지현과나>를연출한박윤진감독은 ‘일랜시아’와함께한시간이사라지는것이아쉬워기록을시작했다고한다. 말하자면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는 순간 게임 안의 모든 콘텐츠에 들인 유저의 노력이나 추억들도 함께 사라져버린다는 것. 그러나 “일랜시아왜하세요??”라는질문에대한남은유저들의답에는단지과거를향한향수만이있진않았다고한다.
운영자와여타의많은유저들이떠난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이아니라그들은 ‘일랜시아’라는세계에스스로남기를선택한사람들이라는것. 각종매크로나버그등이난무하지만직접나서거나목소리를내기보다 ‘그냥저냥’ 체념한채게임을하는사람들에게서감독은현실에서의무기력에적응한청년세대의목소리를읽어내기도한다. 초등학교 5학년무렵부터게임을시작해어느덧 20대후반이되었을감독은또다른인터뷰에서 “그때그시절행복했던순간이앞으로도있을것이라는믿음”을이야기한다. 소위 ‘버려진게임’ 세계안에여전히남아자신의기록을지속하고있는감독의발자취와이야기하나하나에매료되었다. <내언니전지현과나>라는영화의존재를뒤늦게안나는인디다큐페스티발을놓쳐이작품을보지못했다. 이영화를직접만나볼기회가생길수있을까. 이흔적들을계속해서살피는동안아직만나보지도못한영화에이미깊숙하게매료되었다. 이마음은제목에서부터이미느꼈다.
‘내언니전지현’은 감독의 게임 속 캐릭터 닉네임인데, 그 이름과 ‘나’는 동일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세계 속 자신과 세계 밖(현실)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별개인 것으로 구분 짓기도 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그 ‘따로 또 같이’인 ‘나’들 사이에서 자신의 현재를 찾기 위한 진행형의 기록이겠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에는 누구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이 있다.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2020.06.10.)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포스터
*최근 '제2의나라'라는 게임을 틈틈이 하고 있다. 요즘의 '게임 생활'을 돌이키면서 2년 전 이때의 글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