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더 헬멧>(2022)의 공연 정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어쩔 수 없이 이것이다. "작품의 특성상 매우 협소하고 좁은 공간에서 공연이 진행됩니다. 폐쇄공포증을 가지고 계신 관객분 혹은 임신 중이신 분 등 좁고 답답한 환경에서 장시간 공연 관람에 지장이 있으신 분은 관람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정말이다. 그 자체로 작은 극장이기도 하지만,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안내 방송에는 1열 관객들은 발을 가지런히 하고 주변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작은 신체 움직임도 자제해달라는 내용이 나온다. 불과 70분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면 온몸이 뻐근해지는 체험. <더 헬멧>은 1987년과 1991년 서울을 각각 배경으로 하여,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들과 이들을 진압한 백골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연극 '더 헬멧' 캐스팅보드(7월 17일(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한정된 공간과 적은 수의 인물을 다루는 <더 헬멧>의 주안점은 '빅 룸'과 '스몰 룸'으로 나뉘는 무대 구성이다. 그러니까 C구역과 D구역 관객은 '빅 룸'의 이야기 위주로, A구역과 B구역 관객은 '스몰 룸'의 이야기 위주로 공연을 체험하게 된다. 마치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2017)에서 신발가게 주인이 셔터를 내려 연희(김태리), 한열(강동원)과 백골단원 사이를 가르는 것처럼, 빅 룸의 이야기를 보는 동안 대부분의 스몰 룸 이야기 혹은 정보는 음성으로만 간접적으로 들리거나 시야로부터 가려진다. 관객은 동일한 '룸' 안에서도 일부의 이야기만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부분이 어떻게 전체가 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대규모의 환경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보다 <더 헬멧>처럼 소규모 환경과 제한된 인물로 구성하는 이야기가 더 '잘' 쓰기 어렵다. 연출과 무대 구성에 있어서의 실험적인 면만 <더 헬멧>에서 부각되는 게 아니다. 시고니 위버가 중요하게 언급되는 <에이리언 2>(1986)라든지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명곡 'My Way'(1969) 같은 문화적 레퍼런스를 극에 끌어오는 방식 또한 훌륭하다. 눈앞에서 온몸으로 겪는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로 만나는 후대의 관객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체험'시킬 수 있는지에 관해 모범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답이다. 공연이 끝난 뒤, 몇 대는 함께 얻어맞은 듯한 기분으로 '방'을 나서게 된다. 어떤 인물은 그곳을 나간 적이 없었다고 독백한다. 또 어떤 인물은 복학해서 <에이리언 3>(1992)를 볼 거라고,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한다. 21세기의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어떤 시대에는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간명한 사실이 슬픔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동반한다.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