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날씨의 아이’(2019) 리뷰
<언어의 정원>(2013), <너의 이름은.>(2016) 등에서도 비나 구름과 같은 날씨에 관한 요소들을 중요하게 사용했던 일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아예 제목에 ‘날씨’를 포함한 최근작이 <날씨의 아이>(2019)다. <날씨의 아이>는 이상 기후로 연일 비가 내리고 8월에도 한낮 기온 20도를 넘지 않을 정도로 덥지 않은 날씨가 된 도쿄를 배경으로, 가출 소년 ‘호다카’와 기도로 날씨를 맑게 할 수 있는 소녀 ‘히나’를 주인공으로 한다. 우연한 계기로 ‘날씨와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 소녀 히나는 간절한 바람으로 특정한 지역에 비가 일시적으로 그치게 할 수 있는 초자연적 현상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도쿄 시민들은 갖가지의 이유로 히나를 ‘맑음 소녀’라 부르며 그녀에게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의뢰한다.
“사람의 기분이란 건 참 신기하다. 창밖의 아침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로 활기차게 되고,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지금 이야기한 ‘갖가지의 이유’는 모두 사적인 이유들이다. 천식이 있는 딸아이가 좀 더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게 하고 싶어서, 공원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의 방문객을 늘리고 싶어서, 남편의 첫 기일을 맞이해서 등등. 비가 오면 사람들은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며 “오늘도 또 종일 비가 오네.” 하고 중얼거린다. 연일 하천 출입이 통제되고 호우 경보가 발령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이상 기후’라고 명명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된 곳에서 아이들은 그 여름을 어떤 계절로 기억하게 될까.
정확한 과거 기상 관측 데이터를 찾아보지 않고 쓰는 이야기이나 유년의 여름은 지금만큼 습하고 더운 시절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년 ‘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날씨’와 같은 키워드들이 날씨 관련 보도에 오르내리고 최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때아닌 폭염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등의 뉴스를 접한다. 이것은 정말 ‘이상 기후’일까?
<날씨의 아이>에는 도쿄가 과거 수 세기 전에는 바다였다는 언급이 나온다. 작중 현재의 모습과 같이 강우가 계속된다면 도시는 결국 물에 잠기게 되고 사람이 살 터전은 현격하게 줄어들게 되어버릴 텐데, 어떤 이는 그것을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돌아온다”라는 취지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라고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술한 히나는 날씨를 맑게 하면 할수록 신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호다카는 그런 히나를 보면서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비가 그치지 않는 날씨가 바뀌려면 ‘맑음 소녀’를 하늘에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는 일종의 설화가 작중 등장하는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결말을 택하면서까지 어떤 선택을 지켜내는 인물의 내면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터뷰에서 “날씨란 지구적인 규모의 순환 현상이지만 인간에게는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날 날씨에 따라 기분과 행동까지 변한다”라는 언급을 한 적 있다. <날씨의 아이>에는 'Weathering With You'라는 영문 제목이 붙어 있다. “날씨는 하늘의 기분”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제목은 '당신과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일 테다.
히나와 호다카의 시점 밖에서 묘사되는 <날씨의 아이> 속 세계는 제법 비관적이다. 그러한 세계는 쉬운 체념을 낳는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냥 가만히 앉아 적응하자고 마음먹어버리는 것. 만약 희망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세계는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스토리텔러는 그럴수록 세계가 여전히 괜찮아질 수 있다고 믿어야만 했던 것인지도 모르고 신카이 마코토는 오랫동안 그중 한 사람으로 있기를 택해왔다.
<날씨의 아이>에서 호다카가 내리는 선택은 결국 히나를 지켜내기 위한 결연한 각오에서 나온다. 흔히 재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인류를 위해 내리는 비장한 선택이나 희생이 등장하지만 호다카의 그것은 대의와 거리가 멀다. 곁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한 각오. ‘하늘의 기분’을 헤아리는 일은 수 세기를 거듭해 정교하게 발전해왔다. 기후 위기가 중대한 화두인 요즘, 우리는 과연 날씨를 어디까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돌아본다. ‘좋은 날씨’도 참으로 상대적이어서, 지금 내게 견디기 어려운 날씨가 누군가에게는 지내기 알맞은 정도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기분이 그러하듯, 날씨가 단지 하늘의 기분이라면.
*본 리뷰는 기상청 기관지 <하늘사랑> 2022년 9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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