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리뷰
2019년 말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역사 속 인물인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을 주인공으로 사료에 허구적 상상을 보태 만들어진 작품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멜로 장인’으로 꼽히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작답게 두 사람의 우정에 초점을 둔 영화인데, 캐릭터 간의 관계 자체만큼이나 돋보이는 건 과학기술을 대하는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의 태도와 ‘애민(愛民)’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배경은 훈민정음 반포로부터 4년 전인 1442년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불과 2년 뒤인 1444년, 한국사에서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최초의 역법서인 『칠정산』이 발표된다. 생몰연도가 불명인 장영실의 이름은 『칠정산』에 없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선은 세종 즉위 초기까지도 명나라의 역법을 따르고 있었다. 이는 다분히 당시 명과 조선의 관계에 의한 것이겠으나, 문제는 두 나라 간 위치와 거리상의 이유로 절기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의 시간에 맞는 물시계를 만들어 세종의 신임을 얻은 장영실은 이후 세종과 별자리에 대한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들의 움직임과 위치를 관측하고 나아가 계절과 절기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몰두하게 된다. 마침내 장영실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기계인 ‘간의’를 만드는데, 조선이 독자적인 천문 기술을 갖는 것을 명이 달갑게 여길 리 없었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주된 서사는 관노 출신으로 종3품 대호군의 벼슬까지 오른 장영실의 처분을 둘러싼 조정 관료들과 세종의 대립 및 고뇌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세종파 대신들과 영의정인 황희파 대신들 간의 기싸움도 다뤄지는 가운데 세종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하고 장영실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건에 직면한다.
21세기를 사는 관객에게 장영실의 신분과 조선과 명의 관계 때문에 한 나라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저해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한편으로 답답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백성들의 복지와 일상을 염려하는 마음보다도 다른 정치적 요소들이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정세를 보면서 관객들은 동시에 현재를 영화의 연장선에서 떠올리게 된다. 시대의 차이를 실감하는 일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것은, 역사를 배운 입장에서 ‘그때 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같은 가정법을 떠올리게 되는 마음일 테다. 가령, 당시 장영실이 만들었던 발명품들이 훼손되지 않고 후세에 그대로 전해졌다면, 하는 가정 말이다.
장영실은 신분의 벽을 넘어 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꿈꾼 인물이고, 세종은 장영실에게서 잠재된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게 이끌고 조력한 인물이다. 더 간단히 표현하면 세종과 장영실은 서로의 이상을 실현시켜 주었다. 예컨대 명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절기 구분을 원했던 세종의 바람을 장영실은 독창적으로 개발해낸 도구와 기술들을 통해 조선만의 절기를 만들어 실현한다. 이것의 기반이 천문(天文)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두 사람이 함께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나누는 미래에 관한 대화다. 원대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한 열의와 애정이 있었으며, 꿈의 실현을 가능하게 해 줄 조력자가 있었다. 함께 꿈을 꾸고 그것을 공동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여전히 닿는 메시지를 남긴다.
오스카 와일드의 한 희곡에 쓰인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땅에서도 누군가는 위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꿈을 꾼다는 건 여기가 아닌 곳을 올려다본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세종이 “왕이 되면 하루 종일 아래만 내려다보면서 지내야 하는데 밤하늘을 보면 내게도 올려다볼 곳이 있다는 게 좋다”라고 말하는 건 그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조선을 어떠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는 의미다. ‘장영실’은 그런 ‘세종’의 꿈을 앞당겨줄 능력과 마음을 지닌 인물이었다. 당대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나아가 세종이 꿈꾼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세상’도 후대에 정말로 찾아왔다. 그들이 꾼 꿈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수백 년 후의 미래, 곧 현재에까지 이어진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애호하는 ‘성덕’인 사람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능히 하늘의 별을 손으로 그릴 수 있다. 앞서 별을 올려다보는 영화 속 장면이 중요하다고 한 건, 두 사람이 별을 손으로 직접 가리키며 꿈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리뷰는 기상청 기관지 <하늘사랑> 2022년 11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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