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2015), 장 마크 발레
미처 소중한 줄 모르고 무심했던 사람을 잃은 후 남겨진 사람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또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의 아내 '줄리아'(헤더 린드)는 영화 초반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죽고, 뜬금없게도 '데이비스'는 아내가 사망한 병원의 자동판매기가 자신이 주문한 초콜릿을 꺼내지 않은 것에 대한 장문의 불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자판기 회사의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 '카렌'(나오미 왓츠)은 편지를 읽은 후 '데이비스'에게 연락을 한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마치 뒷 얘기를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 구조이나, <데몰리션>은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영화 중 형식과 연출에 있어서는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때로는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제목처럼 많은 것들을 파괴하거나 뒤틀어놓지만 <데몰리션>은 삶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전작들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회사 직원들은 괜찮냐며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고 지인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메시지까지 보내지만 정작 '데이비스'는 누군가를 상실했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실감을 하지 못하고 게다가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기는 했었는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 차 안에서의 마지막 순간 아내는 물이 새는 냉장고를 2주째 고쳐주지 않는다며 남편에게 핀잔을 줬고 그 한 마디는 사무실 컴퓨터를 분해하고 집 냉장고를 박살내는 등 영화 내내 '데이비스'의 행동을 지배한다.
그런 '데이비스'를 바라보는 영화는 아주 솔직하면서도 스스로 캐릭터를 판단하고 설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데이비스'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영화의 시선이 거의 차이가 없다. 이상해보이는 행동에 넋 놓고 지켜보다가 조금씩 그의 감정 변화에 영화도 함께 움직이는 가운데 감정의 사회적 연결에 대한 날카로운 드라마로 향한다. 우리가 반드시 느껴야만 하는 슬픔이 있던가. 아내의 죽음에 무덤덤하던 '데이비스'가 '카렌'과 그의 아들 '크리스'(유다 르위스)를 바라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며 개인적 감정의 사회화에 대해 생각한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거나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나곤 하는 상황들은 삶 속에 실재하고, 그런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데몰리션>은 극단적인 상황과 극단적인 행동을 계기로 하여 정확하게 짚어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각 내고 분해하는 인물의 행동을 소름 끼칠 만큼 실감 나게 묘사하는 제이크 질렌할은 <데몰리션>에서 그의 눈빛보다 더 빛난다. 차분한 목소리가 오히려 감정을 담아낸다. 스스로도 실체를 알지 못하고 바라보는 타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심정을 말이다.
바로 그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탁월히 소화하는 배우들의 날것의 사실적인 연기에 힘입어 <데몰리션>은 사회화된 사적 감정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경험은 그 탐구의 계기가 된다. 가공되지 않은 솔직한 결론을 내놓는 <데몰리션> 속 주인공의 '상실 대처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관객의 몫이다. 때로는 슬픔을 느끼기 위해, 혹은 그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담담히 극복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고 어떤 것들은 버리거나 스스로 망가져보기도 할 것을 <데몰리션>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 8/10점.)
<데몰리션(Demolition, 2015)>, 장 마크 발레
2016년 7월 13일 (국내) 개봉, 100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크리스 쿠퍼, 헤더 린드, 유다 르위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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