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 스티븐 스필버그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현실의 문제가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꿈은 그 크기와 밀도에 관계없이 종종, 혹은 많은 경우 불필요하거나 허망한 것으로 취급 받곤 한다. 그 자체로 내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속성 때문이기도 하고, 대개 '어린 아이들이나 한 번쯤 갖는 것'으로 여겨져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동심과 유년기의 꿈과 타협하는 과정이다. 이상하지 않다. 하늘을 나는 빗자루는 동화에만 존재하며, 마스크를 쓰고 악당을 제압하는 슈퍼히어로는 그래픽 노블에만 존재한다.
영화계에도 자극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 <E.T.>를 연출하던 시절을 지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전쟁>, <링컨>, <스파이 브릿지>로 넘어오며 동심과 낭만 대신 극명하고 냉정한 현실의 드라마로 그 중심을 옮겨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로알드 달의 원작 <The BFG>를 통해 그는 여전히 순수하고 동화적인 낭만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종종 휘발적인 자극과 단순한 물량공세를 중시하곤 하는 요즘의 대중적 화법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세계는 그 막대한 제작비(순 제작비만 1억 4천만 달러다.)에 걸맞게 시각적 황홀함의 극치를 달리는 가운데 근위병과 헬리콥터가 공존하는 이 기묘한 세계의 '거인 나라'가 실존할 것 같은 생생함을 선사한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아동 관객들에게 도무지 호감이 가지 않을 것만 같은 'BFG'도 중반을 넘어가며 그 순수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관객을 동화시키며 그 크기는 곧 동심의 크기를 상징한다. 극 중 'BFG'의 '직업'이기도 한, 꿈을 가공하고 구체화 하는 과정은 할리우드의 영화 문법에 큰 영향을 끼쳤던 스필버그식 판타지가 여전히 유효함을 느끼게 한다. 상영시간에 비해 다소 단선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내레이션과 인물의 대사, 영상, 음악은 고르게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전하고자 하는 바와 조응해 원작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도 완성도 높은 디즈니 동화의 맥을 잇는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그 비주얼을 제외하면 많은 부분에서 상업영화로서의 흥행성을 빗나간다. 아동과 성인 관객 사이에서 지향점이 다소 모호하며, 내러티브와 별개로 어떤 장면은 그 분량 조절에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듯 보인다. 실제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작 중 흥행 상위권에 포진한 영화들은 대부분 21세기 이전의 작품들이다. 상기에 서술한 바 그는 <미지와의 조우>, <E.T.> 같은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처럼 적었으나, 2011년에도 그는 이보다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전쟁 영화가 있을까 싶은 <워 호스>를 필모그래피에 남긴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세기가 바뀌어도 그의 영화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내지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을 끝내 스크린에 구현한다. 아름다웠던 과거와 고전을 찬미하는 것이 아닌, 당당히 오늘과 내일과 그것의 접점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한 사회다. 모두가 변화를 꾀하고 자신보다 상대에게는 그것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한다. 팍팍한 현실에도 자연스레 '좋은 것'만 기억하고 꿈꾸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그는 로알드 달의 이야기를 빌어 정말로 '꿈꿀 만한 것'을 선물한다. 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가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힘든 일도 있고 마음 아픈 일도 분명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결론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럼에도 이 세상에 반드시 하나쯤 찾아오는 행복과 희망의 열매를 거두어들인다. 그 순수함에 혀를 내두르며 슬슬 하품을 할 즈음이면, 가장 맑고 떠들썩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상영관을 크게 채운다. 꿈꾸는 어른은 끝내 이 세상을 크게 만든다. (★ 8/10점.)
<마이 리틀 자이언트(The BFG, 2016)>, 스티븐 스필버그
2016년 8월 10일 (국내) 개봉, 117분, 전체 관람가.
출연: 마크 라이런스, 루비 반힐, 빌 헤이더, 레베카 홀, 페네로프 윌튼, 라프 스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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