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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8. 2016

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비극

<덕혜옹주>(2016), 허진호

권비영의 원작을 각색한 <덕혜옹주>의 거의 유일한 뼈대가 되는 것은 '덕혜옹주'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다는 점 그 자체다. 많은 것이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은 그녀의 생애에 대해 사료와 상상력을 결합해 기술한 소설 <덕혜옹주>처럼, 영화도 그녀의 생애를 토대로 한 '순수 창작물'이라는 점을 도입부에 명시한다. 이러한 뼈대로 배우의 얼굴을 위시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 역시 황녀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자 누이, 여인이었던 '이덕혜' 개인이 겪어야 했던 감정과 심경이다.


늦둥이로 태어나 고종의 사랑 속에 자란 덕혜는 1919년 고종의 승하 후 영친왕을 따라 강제로 일본의 학교에 보내졌고, 일제의 내선일체를 위한 허수아비로 전락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왕실 역시 명맥만 이어갔을 뿐 독립운동을 하는 등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덕혜는 점차 사람들에게도 잊혀지며 해방 후에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영화 역시 조선왕실을 독립운동의 주체로 묘사하지 않으며, 오히려 왕실은 상해 망명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내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의 특성상 허진호 감독 특유의 장기이자 그를 상징할 만한 멜로가 부여되기는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덕혜'(손예진)와 '장한'(박해일)이 어릴 적부터 형성해 온 유대감은 두 배우의 연기를 빌어 (게다가 노인 분장과 표현 역시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뛰어나고 자연스럽다!) 영화를 내내 지탱한다.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의 연설 신과 같이 '마지막 황녀'로서의 비극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가 극의 균형을 흐트려놓기도 하고 인물들의 행동에 있어 개인적 동기와 역사적 동기가 일관되지 못하거나 서로를 편의적으로 대체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 부분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덕혜'와 '장한'을 항일 운동의 주체처럼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난을 조명한다는 작품의 시작점을 <덕혜옹주>는 비교적 일관성 있게 지키면서도 관객에게 크게 무리하지 않고 정서적인 공감대를 품격 있게 전달하는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이 녹아 있다. 인물과 캐릭터의 구축을 위한 각색은 미화 내지는 왜곡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타의 '실화 기반' 영화들 역시 모든 것을 있었던 그대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오히려 <덕혜옹주>는 민감한 시대적 배경을 다루면서도 의지와 관계없이 역사에 휘말린 여인의 비극으로서 인장을 뚜렷하게 새긴다. <암살>처럼 감상적인 결말로 향하지도 않으며, <인천상륙작전>처럼 소재를 제외하면 기획 뿐인 속 빈 영상 선전물에 그치지도 않으며, 그 의미와 역할에 있어 의문을 남기는 캐릭터도 없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한, 사실인 것과 사실과 다른 상상의 것을 구분하여 수용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 6/10점.)



<덕혜옹주>(2016), 허진호

2016년 8월 3일 개봉, 127분, 12세 관람가.


출연: 손예진, 김소현, 박해일, 윤제문, 라미란, 안내상, 김대명, 고수, 박수영, 정상훈, 백윤식, 박주미, 김재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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