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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20. 2023

이런 삶은 나도 처음이라서

영화 '툴리'(2018) 리뷰

<인 디 에어>(2009)나 <주노>(2007) 같은 뛰어난 작품성의 상업 영화들을 쓰고 연출해 온 제이슨 라이트먼의 최근작 <툴리>(2018)는 그 필모그래피에서 드물게 제이슨 라이트먼이 직접 각본을 쓰지 않은 작품이다. 대신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는 <툴리>의 주인공 ‘말로’(샤를리즈 테론)처럼 세 번의 임신을 경험한 뒤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어떤(많은) 작품들에서는 모성이 마치 초월적이고 신성한 절대적 존재처럼 묘사되거나 다뤄진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로막는가. ‘엄마는 위대하다’ 같은 말이 지니는 함정이란 게 있다. 위대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이는 “엄마가 되어서 왜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해?” 같은 폭력적 물음을 누군가 듣게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 '툴리' 스틸컷


‘말로’는 매사에 지쳐 있다.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채로 첫째와 둘째를 양육하는 일에 치여 살던 그에게 셋째가 생긴다. 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2011)의 어떤 장면에서 ‘에바’가 유모차에 탄 채 우는 ‘케빈’을 시끄러운 공사장 옆에 한동안 그대로 세워두는 것처럼, ‘엄마가 된다’고 해서 흔히 엄마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역할이 그대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까지 생긴 뒤로 ‘말로’는 더 지쳐가지만, 보모를 고용하는 일은 내키지 않는다. 겉으로 그는 ‘남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게 편치 않아서’라고 이야기하지만 짐작컨대 ‘말로’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가 힘들다고 보모를 데려다 쓰면 누군가는 엄마가 자기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 손을 빌린다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 (단지 샤를리즈 테론이 50파운드 넘게 중량을 하고 화장하지 않은 채 나온다고 해서 드러나는 게 아닌) 속에서 ‘말로’는 결국 보모를 부른다. 단지 둘째 ‘조나’가 정서 불안이 있다거나 하는 설정들만으로는 ‘말로’가 겪어야 하는 고단함은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 하나 ‘말로’를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정작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가 온 첫 날, ‘말로’는 ‘툴리’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영화 '툴리' 스틸컷


“그냥, 누가 날 챙겨주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이 말이 결국은 <툴리>가 육아와 가사 노동을, 무엇으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노동’임에도 그 가치와 보상이 흔히 제대로 계산되지 않는 것을, 사회적 화두로 끄집어내는 대신 개인적 성장의 테마로서 ‘말로’의 이야기를 한정 짓는다고 해도 <툴리>가 그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챙겨주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말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말로’는 집에서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철저히 혼자 모든 걸 감내해야만 했을 것이다. 남편 ‘드류’(론 리빙스턴)가 아이의 숙제를 봐주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물론 그 자체로 나름의 역할을 하겠으나, 그는 영화의 많은 대목에서 (아래층의 ‘말로’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헤드셋을 쓴 채 콘솔 게임에 몰두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은 왜 <말로>가 아니라 <툴리>인가. 여기에 어쩌면 모든 게 담겨 있다. 팍팍하고 힘든 일상에 나타난 보모 ‘툴리’ 와 주인공의 인간적이고 진솔한 유대 혹은 보모로 인해 찾아오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 정도로 막연하게 테마를 짐작한다면 후반부에 벌어지는 어떤 일들과 그것으로 인해 다시 설명되어야만 할 중반의 모든 일들은 꽤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삶과 ‘말로’로서의 삶 사이에서 찾아가는 나름의 균형 정립 과정을 <툴리>는 따뜻한 시선과 감각적이고도 세련된 연출, 무엇보다 ‘말로’의 매 순간에 눈 뗄 수 없게 만드는 훌륭한 각본으로 그려낸다. 물론 <툴리>는 가사 노동과 육아의 부담감과 무게를 등한시하는 남성들을 고발하거나 섣불리 여성을 연민하지는 않는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말로’와 ‘툴리’의 관계는 그 표면 이상의 함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로부터 내 삶이 영향을 받아 마침내 달라지기도 하듯,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로부터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모두가 자기 몫이고 자기 역할이라고만 생각해왔던 인물에게 찾아오는 변화. 그건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고 환원될 수도 없는, 매 순간들의 총합 이상으로서 다시 일어서는 나.


영화 '툴리" 국내 포스터


https://brunch.co.kr/@cosmos-j/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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