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이니까, 영화에 관해 쓰자는 거창한 결심
그래, 영화에 관해 생각하고 쓰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진정으로 할 일은 영화 글을 쓰는 것이구나, 하고 어느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일종의 유행 내지는 새로운 기류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 구독자를 모집해 이메일로 글을 써서 보내는 뉴스레터 형태의 콘텐츠였다. 지금도 시사 이슈나 기업 브랜딩, 마케팅, 신제품 등 다양한 분야의 뉴스레터들이 존재하는데 그때 다분히 영향을 받은 건 이슬아 작가가 발행하는 ‘일간 이슬아’였다. 막연한 접근이었다.
일정한 구독자이자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가 이메일을 통해 수신인에게만 전해지는 글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간 이슬아’가 최초의 이메일 연재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영향을 받아 나도 연재를 시작한다고, 알리고 싶었다. 그러한 내용을 이슬아 작가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며칠 뒤 그로부터 응원한다며 회신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통해 마감이 있는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 “말하자면 스스로를 조금 더 채찍질하고 싶어 지고, 조금 더 성실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영화일기는 매일 작성하긴 하지만 엄격한 마감이 존재하는 글은 아닙니다. 하여, 스스로에게 강제성 있는 마감을 부여하는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
[봐서 읽는 영화] 첫 번째 호 구독자 모집 공지에 썼던 글 (2019.03.01.)
[봐서 읽는 영화]라는 이름으로 첫 호 구독자를 모집했다. 4주 구독료를 9천 원으로 잡고 격일마다 글을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제법 구독자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내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가? - 정확한 기준은 없겠으나, 이메일로 매월 일정한 횟수와 분량의 글을 구독자에게 보내는 일이 시간 대비 충분한 보상이 될 만큼 구독자를 확보할 만한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그렇다)
2) 세상에 나 말고도 ‘영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리뷰든 에세이든 특정한 영화를 소재로 한 글이 확보할 수 있는 독자층에는 한계가 있다. 작가의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이야기를 쓰는 에세이에 비하면 그렇다.
3) 1번과 2번의 연장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글이 매월 유료로 구독할 만큼 매력적이거나 독자적(Exclusive)인 글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냉정하게 보자면 조금 더 충실하게 잘 갖춰진 ‘기획’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봐서 읽는 영화]라는 이름으로 3개월, 약간의 리뉴얼(나름대로 3개월 구독시 10% 할인과 같은 특약(?)도 만들었다!)을 거쳐 [1인분 영화]라는 이름으로 1년 5개월 동안 연재를 지속했다. 스티비와 같은 뉴스레터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혹은 시각적인 디자인 작업을 할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기에 내 이메일 연재는 제법 투박했다. 그럼에도 한 달도 빠짐없이 구독을 연장해 주시는 분이 있었고, 어떤 분은 심지어 거의 1년 치에 가까운 구독료를 선입금(?)해주신 분도 있었다. 이따금 내 이메일에 잘 읽었다거나 혹은 (글 혹은 그 영화에 대한) 본인 의견과 감상을 공유해 주시는 분도 있었다. 투박하고 구독자 층이 두텁지도 않은 연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분들 덕분이었다.
수익 측면에서는 큰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뉴스레터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고 마감기한을 지키기 위하여 그 기간 동안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글을 썼다. 평소보다 더 새로운 작품을 많이 감상하기 위해 노력했고 원고를 위해 국내외 영화업계 뉴스도 조금 더 신경써서 찾아보았다. 공개된 소셜미디어 등에 업로드 하는 글에 비하여, 한정된 구독자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글은 한층 더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선다.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 소수’를 상정하며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무렵 본 영화 - <세이빙 MR. 뱅크스>(2014.03.03 국내 개봉)
(...) 트래버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린 날의 자신을 생각하며 『메리 포핀스』를 썼다. 작품과 작가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동시에 쓰인다고 한다. 『메리 포핀스』는 어쩌면 자신의 쓰라린 과거와 아픈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던, 그래서 그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삶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트래버스의 인고의 역작이 아닐까.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했던 꿈에게, 이야기 속에서나마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 슬픈 동화에 지친 자신에게 삶의 작은 희망 하나를 심어주기 위해서. 지난 삶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해서. '이야기꾼'의 존재는 한 번뿐인 인생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가능한 더 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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