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혹은 어쩌면 계속, ’현업‘ 영화인이 아니게 된 시절
몇 개의 모임이나 간헐적인 원고 기고, 이메일 연재와 같은 ‘활동’을 했지만 그게 제대로 ‘일‘이 되지는 못했던 시기였다.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의 일이란, 일정한 곳에 소속되어 근로계약을 맺고 ‘출근‘하는 일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잠시동안만 하는 거야’ 같은 의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웃거린 곳은 2~3주 내외의 단기 인턴 채용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었다. 영화 PR/마케터로 일을 했으니 막연히 PR이나 마케팅 직무에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웹사이트에 가입해 이전 직장에서의 이력 등을 작성했다.
어느 금요일 오후,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친 채 책을 조금 읽다가 한 단기 인턴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근무 기간은 2주, 장소는 여의도. 기업의 통합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IMC가 주 업인 곳이었다. 업력이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국내외 여러 클라이언트를 둔 곳이었다. 회사를 가려서 지원할 상황은 아니었다. 몇 개의 공고를 흘끗 보다가 앞서 눈에 띈 2주 인턴 자리에 지원한 것이 금요일 오후, 거의 5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해당 공고의 마감이 임박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원자가 적었을까, 오후 6시가 되기 전 사이트에서 해당 업체에서 출근을 시켜달라고 했다며 연락이 왔다. 2019년 11월 8일, 그렇게 나는 약 90만 원가량의 급여를 받는 2주 단기 인턴 자리의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직무의 유사성은 있었지만, 다루는 업종이 영화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분야였다. 주 고객사들은 식음료, 제약 등의 산업군에 있었다. 여의도의 한 공유오피스에 입주한 기업에서 나는 제법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완전히 자리 잡았다기보다 당장 무엇이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커리어의 단절. 1년 반 동안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고 하면 경력과 이름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 곱지만은 않은 시선이 더해질 테니까. 다행히 회사 대표님은 커리어 공백이 생겼던 이유에 대한 내 이야기를 어느 정도 헤아려주시는 듯했다.
2주의 인턴기간은 금방 지나갔다. 같은 날 인턴 입사 동기는 나를 포함해 3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며칠 전부터 무단으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2명. 회사에는 총 10여 명의 직원이 있었고, 나는 기자간담회 준비 및 진행, 포털사이트 게재 기사 모니터링, 기업 브랜드 채널의 소셜미디어 계정 관리 등 여러 업무들을 배우거나 보조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대표님은 내게 3개월 수습을 조건으로 정규직 계약을 할 것을 제안했다. 직전 회사에서 받던 것보다 급여 조건도 훨씬 괜찮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는 깨달은 것 같았다. 마치 이제는 내가 영화인이 아니라 그냥 ‘직장인’이 된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는 커리어 공백기처럼 보일 2019년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그 무렵 본 영화 - <다가오는 것들>(2016.09.09 국내 개봉)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을 보는 내내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부러웠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듯한 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는 듯 보이다가도 이내 평정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그가 평생 일궈온, 철학 교육자로서의 기품이, 읽고 쓰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 자체가, '나탈리'의 지금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부러웠던 건, 아직 그런 상황에서 나를 지켜내기엔 한참 미숙하고 먼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나탈리'는 어딜 가나 책을 끼고 살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의연할 줄 안다. 감정을 섣불리 앞세우지도, 그렇다고 그 감정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 내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에게도 내게도 앞으로도 희망적인 삶만 있지는 않겠지만, 쌓아온 이 삶의 시간이 아주 헛된 건 아니라는 바를 <다가오는 것들>의 이야기는 차분하고 극도로 섬세하고 절제된 화법으로 말한다. (…)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