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자이언트’(2023) 리뷰
중학교 때 친구의 영향으로 재즈의 세계에 눈을 뜬 ‘미야모토 다이’는 몇 개월 간의 레슨을 받은 걸 제외하면 고등학교 3년 내내 색소폰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겠다며 그는 매일 강가에서 물에 일렁이는 푸른 달빛을 보며 홀로 불었다. 그러한 순간들마다 그는 이미 ‘블루 자이언트’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다이’는 마침내 꿈을 정말로 이루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았던 도쿄의 밤 어느 재즈바에서, 그는 곧이어 동료가 될 인물을 만나고 자신이 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듯 또 다른 친구를 자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재즈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끈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문학동네, 2022)
보장되지 않은 앞날을 향해 불확실한 길을 걷기로 결연하게 결심한 영화 <블루 자이언트>(2023) 속 ‘다이’를 보며, 특정한 목표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느 영화 속 주인공을 지켜볼 때처럼 관객 또한 스크린 바깥에서 지켜보는 것을 넘어 정말로 그들의 무대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그 여정은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관객과 영화가 이야기를 통해 함께 호흡하듯 ‘다이’는 우연히 만난 피아니스트 ‘사와베 유키노리’로부터 재즈의 기술과 리듬을 배운다. 그와 동시에, ‘다이’는 도쿄에 와서도 매일 대교 밑에서 불던 바로 그 색소폰 연주를 통해 자신이 매일 밤 신세 지던 친구 ‘타마다 슌지’에게 “이것이 재즈로구나” 싶게 되는 떨림과 울림을 경험시켜 준다. 콘트라베이스 없이도 ‘JASS’라는 이름의 ’트리오’로 협주하기 시작한 세 사람은 처음에는 그저 형편없이 모인 꿈만 많은 세 명의 10대에 지나지 않았지만 부단한 연습과 이어지는 기회 속에 더 큰 무대를 꿈꾸기 시작한다.
<블루 자이언트>에서 그들이 꿈꾸는 무대로 일컬어지는 장소는 제목처럼 도쿄에 있는 오래된 재즈 클럽인 ‘쏘 블루’다. 더 이상 재즈를 애호하는 이들이 많지 않게 된 현대에도 명맥을 이으며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명예이자 인장처럼 여겨지는 그곳에 서기에 ‘JASS‘는 갈 길이 멀다. 재능이나 감각이 있다 해도 그것을 빛나게 해주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연습과 반복인데 손가락에 굳은살과 물집이 생기고 몇 년을 계속해서 연주한다 해도 어떤 이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다. 어떤 순간에는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십수 년에 걸쳐온 길이 ’최악‘이라고 혹평받게 되기도 한다. 팀을 이루다 보면 팀원 중 누군가는 자신이 동료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한결같이 직진하는 사람을 보면 ‘멋지다’던가 ‘멋있다’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
생동하는 재즈의 숨 쉬는 순간들과 땀 흘리고 고민하고 그러면서도 나아가는 ‘다이’, ‘유키노리’, ‘슌지’ 세 인물들의 내면을 <블루 자이언트>는 애니메이션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작화와 각본(각색)으로 120분에 걸쳐 치열하게 그려낸다. 자칫 과장되어 보이는 일부 장면들의 연출도 오히려 색소폰과 피아노와 드럼이 함께 만드는, ‘재즈’를 깊이 알지 않아도 마음으로 닿게 되는 ‘붉은빛을 넘어 푸르게 빛나는’ 그들의 에너지를 담기 충분하다. ‘퍼스트 노트’(First Note)에서 시작해 ‘뉴’(N.E.W.)를 거쳐 ‘위 윌’(We Will) 등에 이르기까지 <블루 자이언트>는 만화에 소리를 더해 관객들에게 시청각적인 즐거움과 쾌감을 안긴다.
작중 중요하게 다뤄지는 테마 중 하나는 (특히 솔로 연주를 하는 순간)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그리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어디까지라고 여길지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자신이 연주하는 매 순간, 정말로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된 것처럼 스스로를 내던지고 땀 흘리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가 정말로 일본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정상의 재즈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지 여부 같은 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그렇게 되리라 각오하고 스스로를 그러한 위치에 놓아둔 채 매일을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되리라는 듯이.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 2023),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
2023년 10월 18일 (국내) 개봉,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목소리) 출연: 야마다 유키, 마미야 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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