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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9. 2023

관객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삶의 질문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리뷰

타협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마음과 무너지려는 탑을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려는 의지가 만나 능히 하나 이상의 세계를 지킨다. "이 장면은 불안하고 섬세한 영혼의 아이들이 모험을 마치고 일상을 회복하였으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험을 통해 작은 성장을 거듭해 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그런 여름의 대단원이다."(황인찬, 「재생력」,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서, 창비, 2019) 말하는 왜가리가 인도한 주인 없는 탑이 어쩌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지켜내지 못했던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다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속 시공간은 지나간 한 시대의 인물이 여전히 그곳을 응시하면서 관객에게 제목처럼 질문하고 지시하는 과거이자 미래다. 그간 어떤 세계를 살아왔든 그 삶은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각자의 선택의 결과물이자 여전히 과정이다. 그렇다면 아직 펼쳐지지 않은 세계에서도 우리는 문고리를 놓을지 잡고 있을지 선택할 수 있겠다. 거기에는 스스로 찧은 상처가 남기도 하고 전쟁의 흔적에 대한 양가적 감정과 시선이 자리하기도 하며, 아직도 나아가면서 결정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어떤 순간에는 속절없이 아름다운 광경을 만나게 되기도 하겠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좋은 이야기일수록 쉽고 단일한 정답 같은 건 주지 않는다. 스토리텔러의 역할은 오직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세계를 치열하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단지 자극에 반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계를 넘어 이야기가 남기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거나 또 다른 누군가와 관계하며 이야기를 확장할 때 돈이나 시간, 효율, 기능 같은 것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쉽게 분류하고, 섣불리 판단하며, 타인이 가진 고유한 맥락과 차이보다는 자신의 기호에 상대를 재단하고 끼워 맞추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은퇴를 선언했던 노장이 7년에 걸쳐 만든 또 하나의 작품이 그 기대를 충족했는지는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겠다. 다만 대답하는 대신 물음을 주는 것이 원작을 쓴 요시노 겐자부로가 하려던 일이었을 것이고,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 우리에게 도착한 애니메이션 역시 정확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풍요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지만 나날이 여러 사람의 뜻이 모여 거기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고 그건 어떤 세계를 택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겠다는 말을. (2023.10.28.)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국내 포스터

https://brunch.co.kr/brunchbook/whyikeptwriting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며_"어떻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군수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느냐" 같은 비판은 굉장히 평면적인 이야기다. 어떤 국적, 장르의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쓰자면, 특정한 소재가 등장하는 건, 그 영화의 창작자가 그 소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그 자체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모든 이야기에서 더 중시해야 할 것은 설정과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묘사하는지, 그 흐름과 맥락에 있다. 글쓰기 강의 때도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따져야 한다면 현대 일본이나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문화예술은 전쟁에 대한 성찰과 반성 밖에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요즘은 자신의 해석을 정해놓은 채 창작자의 역사관과 정치관을 거기 끼워 맞춰 무리하게 재단을 하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본다. 문화예술 작품은 역사 교과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훨씬 더 중요한 건 관객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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