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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19. 2016

다시 <맨하탄>으로 돌아간 우디 앨런의 할리우드

<카페 소사이어티>(2016), 우디 앨런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로마 위드 러브>(2012), <블루 재스민>(2013), <매직 인 더 문 라이트>(2014), <이레셔널 맨>(2015)을 거쳐 우디 앨런은 다시 <맨하탄>(1979)처럼 뉴욕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의 영화에는 재즈가 함께였다. 배우를 마치 그 음악 속 음표처럼, 프레임 안의 자연스러운 배경처럼 인물들을 흩뿌려놓고 또 깊이 파헤치고 또 오래 가만히 응시할 줄도 아는 <카페 소사이어티>의 각본과 연출은 2010년대 우디 앨런 영화의 정수를 이룬다.


말하자면 특정 시대의 공기와 특정 공간의 분위기, 자신의 사적 취향을 한 편의 영화로 탁월하고 유쾌하고 풍부하게 녹여낸 작품이면서도 달콤쌉싸름한 고유의 맛이 시종 깃들어 있다. 역사적/종교적 레퍼런스들을 풍부하게 배치해 사소한 즐거움을 더하는 가운데, TV 시리즈와 영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능숙한 배우들이 그 맛을 한껏 살려내 관객들에게 전성기 할리우드의 낭만과 이면을 모두 내어놓는다.

'뭔가 재미난 일'을 꿈꾸며 삼촌 '필'(스티브 카렐)이 있는 할리우드에 발을 들인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필'의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설렘을 느끼고, 사랑을 하며, 아픔을 겪기도 한다. 윤리적으로 보면 결코 유쾌하지 않은, 불편하기까지 할 상황도 "1930년대 '할리우드'와 '뉴욕'의 삶은 과연 그랬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빠져들게 하고 또 적지 않은 장면을 즐겁게 하며 그만큼의 장면을 냉소하게 한다. 성공과 환상을 꿈꾸며 욕망의 땅에 발을 들인다는 골자는 흔하디 흔하지만 '보니'의 캐릭터처럼 속을 쉽사리 알 수 없고 때로는 거리감을 두게 하는 인물들을 배치해 짧은 러닝 타임에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다단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를 상대를 통해 돌아보게 될 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때로는 자신이 살지 않고자 했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가벼이 지나쳐버렸던 사건들의 반복과 조화로 만들어진 우연들에 당황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어떤 풍경이나 감정으로 새삼 혼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삶의 깊은 깨달음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환멸이 되기도 하며, 또 무심히 지나치는 한켠의 흔적으로 흘려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남는 것은 한껏 음미하고 낭비 없이 프레임 한가운데에서 빠져들었던 절정의 순간들일 것이다. 인생은 인생만의 계획이 있고 꿈 역시 꿈만의 길이 있지만, 때로 둘은 많은 여정을 함께 하며 서로를 들쑤셔놓는다. (★ 9/10점.)



<카페 소사이어티(Cafe Society, 2016)>, 우디 앨런
2016년 9월 14일 (국내) 개봉, 96분, 15세 관람가.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크리스틴 스튜어트, 스티브 카렐, 코리 스톨, 블레이크 라이블리, 안나 캠프, 켄 스탓, 파커 포시, 폴 슈나이더 등.



*얼핏 시대극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배우가 1930년대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모습. 몇 장면에서 제시 아이젠버그는 70년대 우디 앨런 영화 속 우디 앨런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코리 스톨도 처음에는 <앤트맨>, [하우스 오브 카드]의 그 코리 스톨인 줄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공간과 인물이 주는 분위기를 이렇게나 뛰어나게 담을 줄 아는 영화는 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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