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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3. 2024

캐시 박 홍의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2021)

의심을 딛고 제 목소리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일

"프라이어는 내가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으로 칭하는 것을 채널링하는 사람이었다.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클로디아 랭킨의 시집 『시민』은 소수적 감정을 탐구하는 책으로는 이제 고전으로 꼽힌다. 화자는 인종차별적 언사를 듣고서 자문한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지? 본 것, 들은 것이 다 확실한데도, 내 현실을 남에게 폄하당하는 경험을 너무 여러 차례 겪다 보니 화자 스스로 자기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감각 훼손이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이라는 소수적 감정을 초래한다." (84쪽)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노시내 옮김, 마티, 2021)는 잘 쓰인 에세이다. 내게는 그의 글이 커다란 주제를 두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챕터를 거듭하면서 느슨하게 이어지고 점차 확장되어 가는 방식으로 서술되는 점에서 그랬다. 게다가 이 이야기가 왜 '소수적 감정'인지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서 저자가 택한 서술 방법은 마치 "폭력이 견디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보여주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장면을 힘겹게 써야만 했다"라는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썼다"라고 이야기하는 루이자 메이 올컷 같은 작가도 있지만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말할 수는 없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므로)


한국인 독자라고 해서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잘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우리 자신을 잘 믿지 못한다. 그래서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낸다고, 자존심이 너무 세다고, 혹은 야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자책한다."(47쪽)와 같은 서술은 한번쯤(혹은 그 이상)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되돌아오는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와 같은 반응을 접해본 적 있을 이들에게도 충분히 가 닿을 이야기로 여겨진다. 문화와 계층을 막론하고 타자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한국계 미국인의 이러한 이야기가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읽히는 건 그 자체로 더 많은 이야기를 재생산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2024.05.09.)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노시내 옮김, 마티, 2021)


*좋은 책이라고 해서 모든 서술과 입장에 전적으로 다 수긍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에도 갸웃하게 되는 대목은 있었다. 예컨대 웨스 앤더슨과 <문라이즈 킹덤>(2012) 이야기. 1965년이 격동기였다고 해서 1960년대를 시대적 배경 삼은 모든 영화가 동일한 정도와 맥락의 시대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 해도 그것이 해당 영화의 창작자가 선보인 작품 세계를 "인위적이고, 협소하고, 짜깁기된" 것이라 규정하기 어렵다.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란 누가 남과 다르면 온 국가가 맹렬히 적대시했던 시대에 대한 환상을 의미"한다는 서술도 단정적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에도 (기계적이라 할지라도) 다양성 중시 기조가 확산되기 시작했던 걸 떠올려도, <문라이즈 킹덤>을 "백인 향수를 일으키는 가장 수구적인 문화적 주범"이라는 서술에 결부시켜야만 할까 싶은 대목이었다.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 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 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 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 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95쪽)


*트레바리 독서모임 ‘씀에세이-노트’ 1회차 선정 도서(2024.05.09.)


https://m.trevari.co.kr/product/cc8c9ffd-0e8e-45c6-9891-1edc422b854a?ttag=1709885322992d159111d42ab4f1db7cb7ba0f8c06a7a&uid=bdc84c3f-bb1a-4540-9904-ba8f4aa567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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