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문득, 갑자기
낮잠을 잘 때 꾸는 꿈은 간혹 생생히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는 동안 그것이 꿈임을 자각한 채로 꾸어지는 꿈도 있지 않은가요? 저는 아직 그런 꿈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꿈속에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그것이 꿈인 걸 몰랐어요. 오늘도 그랬습니다.
서울에 놀러 온 당신은 동네서점들을 몇 군데 추천해달라고 했어요. 저는 그 여정에 따라나섰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아니,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꿈에서의 우리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이태원을 먼저 갔던가, 아니 합정이 먼저였나. 서점에만 간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식사도 했고, 커피도 마셨어요. 각자 고른 책을 함께 읽기도 했습니다. 폰을 꺼내 사진도 몇 장 찍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꿈속의 우리가 정확히 어떤 관계였는지 같은 건 모르겠습니다. 관계라는 게 그렇게 정의로만 내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지 그게 꿈이었기 때문인 걸까요. '당신과 나는 어느 책방에 갔다' 같은 간단한 명제 외에는 꿈속의 저를 붙잡은 몇 개의 순간들만이 맴도는 것입니다.
꿈의 감각이라는 건 이렇게 희박하고 또 희미합니다. 시작과 끝은 기억나지 않고 언제나 과정의 일부만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보이후드>(2013)라는 영화를 혹시 아시는지요. 제목처럼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가족을 이룬 여러 배우들의 12년 동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감독은 마치 연례행사처럼 그 배우들을 매년 불러다 조금씩 찍었는데, 영화를 보면 감독은 우리가 지난날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한 것 같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돌잔치나 생일, 각종 기념일들 말고 그 영화가 주목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나옵니다. 그냥,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 차를 타고 어디론가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와 눈을 마주치는 일들.
어쩌다 만나게 된 꿈 하나가 무슨 대단한 의미였다는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단지 언젠가 이런 꿈을 꾼 일이 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문득 섭섭해질 것 같았거든요. 깨어나고 나서야 그걸 알았어요. 거기 그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것을. 아니, 그것만큼은 깨어나기 전에도 이미 알고 있는 채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꿈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