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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2. 2019

그 계절은 봄이었던가요

곁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며

"나는 더는 당신과 있을 때 즐겁지 않아요."


이 말은 참으로 모진 것이었다. 비록 처음 마음은 당신과 앞으로의 많은 계절을 함께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그 마음이 그때처럼 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당신과 헤어지자고 했다. 그때의 계절은 봄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계절은 여름이었지. 헤어지자는 말을 하면서 당신에게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아요.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당신을 밀어내려고 했을 거야. 지금의 내게는 오직 나의 존재만이 중요하다면서. 그 말이 당신에게는 어떤 상처가 될지를 짐작조차 하지 않으면서.


당신의 생일 선물 이야기를 했어요. 생일을 얼마간 앞두고, 당신의 생일에 무엇을 줄까, 하는 고민이 별로 즐겁지 않은 고민이었다면서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당신은 그걸 가만히 들었다. 아니, 내가 나름의 장문으로 정리한 이야기를 그는, 당신은 한참을 읽더니 내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게는 나만이 중요해, 같은 핑계를 덧붙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의 상황이란, 내가 처해 있는 나의 일이란, 오로지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곁에 당신이 있는 한 내 작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당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리 없으리라고 여겼다. 지금 돌아보면 그 자체가 그리 치명적인 사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신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내게 일종의 과제처럼 여겨졌다는 그 사실이, 지금은 너무나 아프다. 돌아보면 몇 해 전 나는 당신이 지금 내가 하는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라며 항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역시 내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당신을 막으려 했다. 당신의 곁에 내가 여전히 있어야 한다며, 나 역시 당신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며, 이러저러한 말들을 꺼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에게 내가 없으며 내게 당신이 없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니다.


이 심플한 문장. '우리'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의 곁에 함께일 때에만 가능한 말이다. 당신에게 그 말을 하고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당신은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고 내 선택을 후회하냐고?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한데, 그때의 나는 당신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는 일종의 합리화를 한다. 그땐 정말이었다. 당신을 인위적으로, 억지로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때 정말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했어야만 했다. 깊은 우리 젊은 날. 우리의 많은 추억이 말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아직 그날의 내 말에 대해, 온전하게 합리화할 수도 없고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없으며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 자체에, 그 사실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가. 아니, 우리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숙명에 놓여 있었는가. 나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날의 내 행동과 내 말에 대하여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되어야만 했나요? 라는 질문 비슷한 것을 남기며.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만이 지금은 중요하다. 그때가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사실. 그때가 봄이었다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 당신이 봄이었나요? 나는 당신을 여름에 처음 만났는데요. 아무튼. 내 최선과 당신의 최선은 달랐던 거야. 계절이라는 건, 언젠가 반드시 지나가버리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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