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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9. 2019

여름날의 살롱, 함께 보지 못했던 영화

노래 하나에 곧 계절 하나


"<맘마미아!2> 어땠어요?"


그는 내게 "요즘 그 영화 재밌다던데" 하면서 내게 <맘마미아!2>에 대해 물었다. 나는 시사회로 그 영화를 이미 보았고 나름대로 리뷰도 작성해두었을 무렵. <맘마미아>(2008)보다 여러모로 더 만족스럽게 보았으므로, 그가 묻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 영화를 한 번은 더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가 묻자, <맘마미아!2>는 이를테면 '그 사람이랑 봐야겠다!' 싶은 영화가 되었다.



"봤는데 한 번 더 봐도 괜찮아요?"


아마 이런 말을 그가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그렇게 퇴색되거나, 심지어 왜곡되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의 취향이 확고하면서도 타인에게 그걸 드러내거나 혹은 강요하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와 나는 그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이었고, 나는 "언제 그 영화 보시려거든 동행할게요" 정도로 코멘트를 달았다. 그와 나는 어떤 영화를 보기 위해 따로 연락을 하거나 약속을 잡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보게 되는 사이였다. 딱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 사이'까지만이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그런데 내가, 원래 영화 재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에게 그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할 만큼 그에게 어떤 호감 같은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가?


누구에게나 그렇진 않겠으나 영화는 본래 혼자서 볼 때 진정한 몰입이 가능하다. 누군가를 동반하게 되면 몇 가지 난제가 생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그 사람도 보고 싶어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특정 장르(혹은 감독, 배우, 소재 등)를 그 사람도 선호하는가? 여기까지는 대체로 서로 합의하거나 조정을 한다. 두 영화가 상충할 땐 하나를 먼저 보고 다른 하나를 나중에 보자든가. 문제(?)는 다음이다. 한 영화를 같이 보는 두 사람. 사소하게는 극장 안의 수많은 사람들 중 오직 그 사람의 작은 행동, 음료가 담긴 컵에 손을 뻗거나 자세를 고쳐 앉는 등의 일들. 그것은 딱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게 아니어도 어지간히 둔감하지 않은 사람인 이상 주의 혹은 반경에 들어온다.


여기서는 이렇게 된다. <맘마미아!2>가 '재밌다' 혹은 '괜찮다'라고 한 사람은 본인이다. 동행인은 이를테면 내 말이 어떤 기준이 되거나 거기 영향을 받아서 그 영화를 함께 보기로 한 사람이다. 그도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볼까? 이런 영화를 좋아할까? 행여나 그가 하품을 하면서 본다거나 혹은 졸음에 빠진다거나. 그건 소위 '추천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미안함을 느낄 일이다. 당일에 그 사람이 정말 피곤한 몸을 억지로 끌고 극장에 앉아 무거운 눈꺼풀을 눈 끝으로 부여잡고 있어야 할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도, 일단 '같이 영화를 본다'의 주동자는 나니까.



그 후 <맘마미아!2> 이야기는 적어도 두 번 정도는 더 꺼내졌다. 그러나 세상에 영화가 그것만은 아니었으므로, 그때의 우리는 다른 영화들을 보기도 했으므로, 그건 최우선 과제 같은 건 아니었다. 같이 보면 좋고. 아니면 나 혼자라도 한 번 더 볼 것이고. 실제로 나는 그 영화, <맘마미아!2>를 극장에서 시사회 포함 총 세 번을 봤다. 그러나 그 사람과 함께는 아니었다. 그는 각종 전시나 뮤지컬, 연극 등 영화 외에도 많은 문화생활과 공연을 향유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맘마미아!2> 역시 즐겁게 감상했으리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우리는 같이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는 영화를 같이 보지 않았다.


'Now I see everything
in a different light
What a mad day
I was up in the air and ...'



시간이 더 흘러 영화에 처음 삽입된 곡인 'When I Kissed The Teacher'를 다시 들었다. 내 여름이 특별히 어떤 한 사람을 떠올려야만 생각되는 계절은 아니지만, 영화 속 릴리 제임스와 배우들이 함께한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모든 주의는 'When'에 쏠렸다. 그 여름. 내게 여름은 언제나 더운 계절이고 항상 손수건이나 부채, 혹은 휴대용 선풍기 같은 것을 꺼내야 하는 시기지만 유독 그 여름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어지는 가을이 아주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인데, 노래 하나에 계절 하나가 통째로 이렇게 다가와도 될 일인가. 그 여름 그와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만 그 영화는 내게 계속 시작되는 무엇이었다. 필연적으로 음악은 공간을 담는다. 생각과 기억을 담는 건 결국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을 포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공간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계절이 있으며, 그 계절에는 몇몇 발걸음이나 약간의 땀방울, 혹은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볼 때의 그의 옆모습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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