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마음폴짝홀에서 열린 2024년 봄맞이 특강 - '번역가의 시각과 후각'(황석희) 2강 '냄새를 맡아야 번역어가 생성된다' - 에 다녀왔다.
마음산책 황석희 번역가의 특강 중에서
개봉영화 홍보마케팅 일을 하면 막상 자기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는 개봉 후 따로 시간을 내지 않는 이상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야근이 잦기도 하고 워터마크가 찍힌 흑백 화면의 파일이나 비메오 링크로 보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게 개봉 후라고 해도 일의 연장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고 할까. 주말이면 조금 부지런한 쪽으로 움직여 시간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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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건 극장에서 관람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 케네스 로너건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였다. 2017년 2월 15일, CGV 단독개봉작이었다. 만족할 만한 극장 흥행 성적은 아니었지만, 영화 일을 하면서 만났던 가장 좋은 작품이었고(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업무에 참여한 작품 중 처음으로 극장에서 직접 관람한 작품이었다. 거기에 황석희 번역가 님의 크레디트가 적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임팩트 있는 명대사' 같은 게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케네스 로너건 특유의 섬세한 각본을 미국인이 아닌 내가 전적으로 수긍하며 마음이 기울 수 있었던 건 번역 덕분일 것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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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단순히 대사나 내레이션을 잘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겠다. 예를 들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에 인용된 중국 청대의 협사 소설 속 구절과 같은 것을 찾아내는 건 성실하기, 의심하기,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선택과 판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생각은 바뀔 수 있고 완벽한 정답이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거기 멈춰 있지 않고 나아가는 게 직업인의 자세일 것 같다.
마음산책 황석희 번역가의 특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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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창작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제2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별개의 결과물(2차 창작물)이라는 이야기에 동의했다. 제한된 분량과 길이 안에 외국어 사용자의 발화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면서도 뉘앙스를 살려 옮겨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의식과 전문성을 토대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율하면서도 창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는 일을 해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즐겁게 끄덕였다. 말하자면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넘어 한 분야에 오래 매진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교집합 같은 것 때문인데, 그의 자막을 앞으로도 극장에서 오래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마음폴짝홀을 나섰다. (2024.04.16.)